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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속에서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는 법!!

비로소 시작된 새 삶

 2026-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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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이 엘가나의 두 아내를 소개하면서브닌나가 자식이 있었다는 이유로 한나와 서열과 순서를 바꾸어 기술했음을 알아봤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문 성경의 기술 속에는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구조가 숨겨져 있다. 사무엘상 1 2절에서 브닌나와 한나에 대하여 말하고서, 3절에서는엘리에게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다고 연이어 기록할 때, 원문 성경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병치 구조를 사용한다. 이 병치 구조는 ‘있고, 없고, 있고, 없고’를 반복하는 구조다.


그런데 브닌나는 자녀가 있고, 한나는 자녀가 없다고 말하고,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다는 것을 기록했다면, 이제 다음에 ‘없고’가 나와야 하는데 성경은 이 ‘없고’를 남겨둔다. 그렇다면 이 공란에는 누가 들어가야 맞을까? 과연 이 ‘없고’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자녀 없는 아비,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불임의 고통 가운데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주님의 아픔을 계시하신다. 자녀 없는 아버지의 고통 말이다. 이 시대 우리 주님은 불임의 고통을 느끼고 계셨다. 사사기 350년 동안 주님은 생명을 잉태치 못하는 고통 가운데 계셨다.


이스라엘에 그분의 영적 DNA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의 내일을 열 사람이 없었다. 믿음의 다음세대는 단절됐다. 영적 불임의 시대,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과 계시가 사라진 시대, 그분의 부재가 삶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시대, 그 시대적 고통이 한 여인의 삶에 이입되었다.

나는 한 여인의 인생에 불임이라는 결핍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한편으로 마음이 참 아프다. 그분의 아픔을 이 작고 작은 인생의 가슴에 새겨놓아 주신 게 말이다. 분명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아픔의 흔적과 자국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내 아픔에, 당신의 결핍에, 우리의 고통 가운데 말이다. 한나는 자기 고통을 통해 그분의 고통을 이해했고, 자기 슬픔을 통해 그분의 슬픔을 절감했다.


우리도 삶의 문제를 통해 주님을, 주님의 마음을, 주님의 필요를 발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민감한 영역이 있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 과거의 상처, 결핍, 연약함, 장애 등이다. 이것은 어떤 대상을 향한 민감함으로, 또 어떤 영역에 대한 책임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픔이 이유가 돼서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각자에게 장착된 민감함이 고유한 재능이 될수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서 주님의 필요를 깨닫고 주님을 섬길 수 있다.

바로 이 자기 필요의 충족에서 헌신으로의 이행이 한나의 서원 기도에 나타나 있다. 그녀는 주님께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서원 기도를 드렸다. 오랜 시간 동안 한나의 이 서원 기도는 많은 사람에게 오해받았고 잘 못 적용됐다. 많은 사람이 이 서원 기도를 자기 삶에 이렇게 적용하곤 한다.

“주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 거래가 성사되면 제가 헌금을 이만큼 하겠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제가 교회에 나가서 봉사하고 섬기겠습니다.

서원 기도가 어쩌다가 주님과의 협상이 됐는가? 어쩌다가 한나에게 사무엘이 주님과의 거래 조건이 됐는가? 한나의 서원 기도는 주님과 거래를 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 아들을 다시 주님께 드리고 싶다고 기도했다. 그녀는 자신의 필요를 구했지만, 그 필요가 결국 주님의 필요를 채우길 구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나가 서원 기도로 아들을 구해놓고, 결국 그 아들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

‘젖 떼자마자 주님께 바칠 걸 굳이 뭘 구해? 결국 자기 품 안의 아이로 기르지도 못할 거면서 자식이 있어서 뭐 해?


한나가 주님께 아들을 구했던 이 마음이 자신을 그토록 못살게 군 브닌나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는 동기라서 “주님, 이 정도 했으면 됐습니다. 덕분에 제 한은 풀었습니다”라며 다시 사무엘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한나가 주님께 아들을 구했고, 또 그 아들을 주님께 드리고자 했던 이유는, 자신의 결핍을 넘어 주님의 고통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나는 주님의 아픔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이고, 진정한 응답이다. 마음으로 나아가 마음을 얻는 것이다. 내 고통을 통해 그분의 고통을 이해하고, 내 필요를 통해 그분의 필요를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한나는 필생의 사명을 붙잡게 되었다.
많은 이가 한나의 기도를 그저 불임을 잉태로, 결핍을 성취로, 애가를 찬송으로 변화시킨 촉매제로서만 적용한다. 그러나 한나의 기도는 그보다 더 중요한 기도다.


주님을 알고, 사명을 이해하게 된 기도다.
이것이 우리 기도의 진정한 응답이 되어야 한다.

받고 싶은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드리고 싶은 것까지 나아가는 기도로, 응답과 축복에서 멈춰 서는 게 아니라 예배와 헌신으로 나아가는 기도로, 고통 가운데 담긴 사명을 깨닫고 그 부르심에 대한 헌신으로 주님의 마음을 이루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믿음이 넘어진 자리, 원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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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나에게 이르시기를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12:9

 

† 기도

나에게 힘이 되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붙들고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적용과 결단

나에게 힘과 능력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삶 되기로 결단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영상 - 새벽 5시에 오픈 됩니다.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