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동행에서 성령의 내주로 (마14:22-36)
마태복음 8장과 14장에 나타난 두 번의 풍랑 사건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훈련이 어떻게 심화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대조해 보여줍니다. 이 대조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 방식의 변화'에 있습니다.
마8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같은 배 안에 계셨습니다. 비록 주무셨지만 제자들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거리에 계셨기에... 언제든지 예수님을 깨워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육신으로 제자들과 모든 삶을 함께 하신 성육신의 시대, 공생애의 기간이라고 보여집니다.
반면, 마14장에서는 제자들을 홀로 배에 태워 보내시고 예수님 자신은 산 위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거센 비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정말 의지할 데 없는 고립감과 풍랑 한복판에 버려졌다는 상실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산 위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 계셨고,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정확한 타이밍에 거센 파도를 가로질러 물 위로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승천 이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교회시대의 영광에 대한 강력한 예표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산 위(하늘 보좌)에서 기도하시며(롬8:34), 풍랑 속의 제자들(지상의 교회)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모니터링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육신이라는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성령의 내주하시는 영적 임재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사건은 우리에게 새 언약 시대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구약시대에 풍랑은 '제거되어야 할 재앙'이며, 주님은 그것을 막아주시는 '방파제'였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의 풍랑은 '주님이 내 삶 한복판으로 걸어들오시는 길'이며, 내가 주님과 함께 걷는 '무대'가 됩니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풍랑(환경)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나 말씀과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제 육신으로 곁에 계신 주님을 찾는 '옛 언약적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비록 눈앞에는 거친 파도가 넘실거리고 주님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중보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내주하사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할 때,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거센 파도 위를 뛰어다니며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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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곁에 계신 주님(With)을
깨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사시는 주님(In)과 함께
풍랑 위를 걷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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