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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용서의 뿌리는 '긍휼' (마태복음18:15-35)

참된 용서의 뿌리는 '긍휼' (마18:15-35)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용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용서'라는 주제가 이토록 어려운 주제인 줄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하며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용서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단편적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남이 내게 죄를 지었을 때 내가 남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어떤 권리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 상대방은 내게 죄를 지은 죄인이고 나는 그보다 우월한 재판장으로서 너그럽게 그를 용납하고 받아준다는 생각... 그런데 '과연 내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권리나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나도 똑같은 죄인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예화를 읽으면서 정리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엄청난 빚을 은혜로 탕감받은 바로 그 당일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용서치 못하여 멱살을 잡고 바로 감옥에 쳐 넣는 것을 보며... 저게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엄청난 구원의 은혜를 한 몸에 받았으면서도 조금만 누가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발끈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내 모습...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확인하게 되었고, 단 한 사람도 용서하거나 품을 수 없는 소망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사실입니다.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용서한 이유는 '불쌍해서'였습니다. 긍휼 이외에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도 내가 그보다 우월하거나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어야 합니다.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것처럼... 나도 내게 잘못한 상대방에게 내가 받은 주님의 긍휼을 그저 나눠주는 것이 '용서'이어야 합니다. 즉, '용서'는 내가 남에게 행사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가 아니라... 거저 받은 긍휼을 값없이 나누는 '사랑'이요 '섬김'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용서'라는 주제를 깊이 다루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해 주신 그 긍휼하심을 저 또한 동일하게 품기를 원합니다. 사실 저는 아직 용서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님께서 더 많은 사람을 품고 긍휼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저는 진실로 남을 용서할 자격이 없으며, 단지 주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통로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자기 의가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긍휼과 용서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하루를 살아내도록 주를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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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내가 우월해서

베푸는 '아량'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긍휼을 그저 흘려보내는

'통로'로서의 섬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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