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진짜 인터넷에 올라온 어떤 분의 말처럼 인생은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일까요?
창세기는 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인생은 그저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관계를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창조되었고,
서로서로가 사랑하도록 창조되어졌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인생의 이유’입니다.
사람들도 어렴풋하게나마 이를 알고 있습니다.
모든 유행가 가사의 주제가 사랑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인터넷에도 인생의 목적을 묻는 질문 밑에 “여자친구를 사귀어보세요!” 라는 대답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조금 더 나이 든 사람이었다면 아마 “아이를 낳아보세요!”라고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인생을 의미 있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 이 사실에 더욱 깊이 동의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너무나 조그만, 갓 태어난 첫째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이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그것은 저희 부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저 부모 품에 안겨서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연약한 아이,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이 위험한 존재는,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얼마나 사랑을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조금 자라자,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아빠다!”라고 외치며 달려와 품에 안깁니다. 안아주기 전에는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혹여 제가 바빠서 안아주지 않고 다른 일을 먼저 하면 삐집니다.
사랑에 배신당했다는 것이지요!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아이의 내면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본능적’이란 말은 배워서 습득한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우리 안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손과 발을 가지고 있듯이,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랑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손이나 발보다 더 기본적인 인간의 구성 요소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손이나 발, 심지어 뇌의 일부분이 없어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입니다. 그러나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의 동의어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DNA 속에 이런 욕구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왜 인간에게는 손과 발과 눈과 코와 귀가 있느냐?”라는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창조주가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드실 때 손과 발, 눈과 코를 그 DNA 속에 집어넣으셨듯이, 동일하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역시 우리 안에 넣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닮았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사랑’과 ‘하나님’은 동의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인간의 동의어가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 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예.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교제를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서로서로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고 저와 여러분을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교제를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고, 죄로 인해 단절된 사랑의 교제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와 실제적인 사랑의 교제를 위해서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고전 1:9 표준새번역]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가지게 해주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 즉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고후 13:13 표준새번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성령님도 우리와 사귐, 사랑의 교제를 위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경은 온통 사랑의 교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성부 하나님도, 성자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두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이 사랑을 받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 인간을,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창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섯째 날은 인간을 만드신 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모든 것, 아담과 하와를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좋았더라’의 히브리어는 ‘토브’(ֹבוט)입니다.
이 단어는 “좋아하는, 반가운, 가장 좋아하는, 최고로 기쁜, 달콤한” 등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시고 최고로 기뻐하시고, 최고로 사랑하시고, 최고의 희열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느꼈던 황홀함은, 하나님이 저희를 창조하시며 느끼셨던 희열, 바로 ‘토브’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이 느끼셨던 ‘토브’를 저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노숙자들이 왜 자살할까요? 아무에게도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요?
청소년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요?
인간은 사랑받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사랑받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빌리브갓, 고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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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장 34, 35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 기도
하나님, 서로 사랑하며 기쁨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자녀 되게 하시옵소서. 미워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하루되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서로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하루를 위해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