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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고…

탐욕은 모든 초점을 나에게 맞추는데, 분별력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서 건져낼 수 없다.

 2022-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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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장 1-12절은 조카 롯이 아브라함에게서 독립한 후에 발생한 첫 사건이다. 롯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다. 그가 전쟁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 창 14:11,12

지금 무슨 상황인가? 삼촌 아브라함이 “어디를 택하든 네가 먼저 택하면 내가 양보하겠다”라고 통 큰 양보를 해주었더니 롯이 너무나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같이 풍성해 보이는, 겉보기에 좋은 곳을 택해서 그리로 내려갔더니 불행한 일이 닥쳤다. 왜 이런 불행이 생겼을까?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운 땅이었지만, 거기에는 불행의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 창 13:13

이 한마디가 이후에 롯이 겪게 될 엄청난 불행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 아닌가? 이렇듯 탐욕으로 잘못 선택한 그 땅에서 롯이 끔찍한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사건이 전쟁이다.

롯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자기 눈에 탐나는 땅이면 그곳은 탐욕에 찌든 사람이 다 노리는 땅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롯이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탐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줄 몰랐던 롯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분석하면 정확하다.

이런 관점으로 창세기 14장 1-12절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14장 1-12절 말씀의 전후를 살펴보면 롯을 묘사할 때 꼭 같이 등장하는 게 있다.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 14:12). 롯만 잡혀갔다고 하면 되는데 재물까지 부연해서 넣었다. 이후에 아브라함이 그를 구출해주는데 그때 기록한 내용도 똑같다.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창 14:16). 롯만 구해줬다고 하면 되는데 “롯과 그의 재물과”라고 재물을 꼭 같이 기록한다.

성경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포인트가 뭘까?

롯과 그 재물을 동일시함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롯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표현이다. 롯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재물이었고, 롯의 존재 자체가 재물과 한 세트로 묶일 정도로 그에게는 재물이 모든 것이었다.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게 무슨 소용이야?
돈만 있으면 되지. 하나님의 도움 필요 없어. 돈이 나를 인도하는 거지.’

요즘에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롯도 이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던 인물이었다.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그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자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도우려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달리 롯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참한 인생 아닌가? 이것이 탐욕에 빠져 사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비참함이다.

그래서 나는 롯의 모습을 중심으로 ‘탐욕’이 가진 일반적인 문제점 두 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탐욕이 가진 첫 번째 문제는, 탐욕은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롯이 선택한 그 땅은 탐욕에 찌든 자들이 모두 호시탐탐 노리던 그야말로 탐욕의 땅이었다. 그래서 본문을 읽어보면 흡사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창 14:2). 시작부터 싸움이다.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창 14:4). 이번엔 배반이다.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창 14:5). 그러더니 그다음부터는 계속 ‘치고, 치고, 또 치고, 치니’로 도배가 되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롯은 이 탐욕의 전쟁터에 제 발로 걸어간 것이다. 왜 그랬을까?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탐욕은 그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탐욕이 가진 두 번째 문제는, 탐욕은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12절을 다시 보자.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 14:12). 롯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재물인데, 정작 위험에 처하니까 그가 가진 수많은 재물이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말씀도 이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라고 하시고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 눅 12:16

그리고 그 부자의 특징을 쭉 열거하신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 눅 12:17-19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인가?
내가’이다.

이 부자는 지금 ‘내가’ 날 위해서 쌓아둔 게 많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걱정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어리석음이 무엇인가? 모든 초점이 자기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모으고.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를 보라.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 눅 12:20

내가 왜 탐욕은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줄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지 알겠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만 알고 자기만 위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 같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해로운 것이다. 또한 이는 우리의 악한 본능이기도 하다.

두 명의 형제에게 과자 세 개를 주면 열이면 열 싸움이 난다. 서로 자기가 두 개 먹겠다고. 이 문제에는 형이고 동생이고 없다. 이 땅의 모든 싸움은 ‘내가 더 갖고 싶다’는 인류 보편적인 이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 탐욕의 뿌리가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 안에 너무나 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이런 말을 했다. 욕망이란 창조 때 주어진 인간 본성이 아니라 이기적 동물로 타락함으로 나타난 제2의 습성이다.”

참 의미 있는 말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탐욕적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탐욕으로 가득한 모습이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이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나타난 제2의 습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거스틴도 비슷한 말을 했다. “죄악된 욕망은 본성이 아니라 본성의 질병이다.”

욕심이 나서 기어이 빼앗아놓고 ‘인간이 다 그렇지’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데, 인간이 원래 다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본성이 아니라 본성의 질병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것처럼 영적으로 병에 걸린 것이다. 절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래 창조 질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악한 본성과 싸워야 한다. 방치하면 안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갈 5:24

이 말씀을 항상 묵상함으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탐욕은 영육 간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탐욕은 본질적인 위기에서 우리를 건져낼 능력이 없다. 재물이 어리석은 부자를 구해낼 수 없었듯이 말이다. 이 두 가지를 항상 기억하고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 가슴 뛰는 부르심, 이찬수

† 말씀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 시편 119편 36절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 전도서 7장 7절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고린도전서 6장 10절

† 기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탐욕적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나타난 이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탐욕이 영육 간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며, 나를 위기 가운데 건져낼 수 없음을 꼭 기억하고 늘 주님의 도우심만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우리가 탐욕을 경계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그 복을 흘려 보내라고 명령하셨는데, 탐욕은 그 복을 흘려 보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복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도록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결단하고 기도합시다.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