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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서야 할 절망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성령님은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세요.

 2022-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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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의 상황에서 즉시로 할 일
#절망과 좌절에서 회복되는 시간 #손 내밀기의 기적

이 본문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첫 번째 치유 이적입니다. 성전 미문(美門, 예루살렘 성전의 동쪽 기슭에 있는 문으로 금과 은, 구리 따위로 아름답게 꾸며짐)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참 예배자가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에요. 예수님의 사역이 사도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1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은 늘 하던 대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갑니다.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기던 유대인은 저녁, 아침, 점심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전통이 있었어요.

당시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했어요. 예수님이 ‘70인 전도단’을 파송하실 때도 둘씩 보내셨지요(눅 10:1). 또 둘은 ‘증인의 수’라는 의미로 두 사도를 통해 일어날 사건의 중요성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2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란 표현을 통해 그가 도저히 나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임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가 구걸해서라도 생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날마다 성전 미문에 그를 떠메고 왔지요.

그가 앉아있던 미문은 말 그대로 금과 은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문이었어요. 당시 성전은 에서의 혈통인 대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짓기 시작했는데 예루살렘 면적의 4분의 1 크기로 몹시 화려하게 짓고 있었어요.

유대인들은 미문을 통과할 때마다 스스로 택함을 받은 민족이자 예배자라는 자부심과 종교적 허영심을 채웠을 거예요. 종교심을 자랑하는 화려한 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갔겠지요. 더욱이 구제를 중시하는 유대인들에게 미문 앞 앉은뱅이는 구제 행위를 과시하기에 아주 적합한 존재였어요. 앉은뱅이도 그 점을 이용하고 있었고요.

3-5 앉은뱅이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해요. ‘구걸하다’가 미완료형 시제로 표기된 건 그가 끈길지게 구걸했음을 의미하지요.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보며 말했어요.

“우리를 보시오!”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에게는 여러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못 걷는 사람은 성전에 들어갈 수도, 제사장이 될 수도 없지요. 하지만 종말론적 잔치에는 어떤 조건의 사람도 나음을 입고 초대받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또한 ‘오늘도 무얼 받을까’만 궁리하며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거지 근성’에서 우리의 잘못된 예배 태도와 동기를 발견할 수 있어요. 이런 잘못을 고치고 참 예배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을 처음 지난 것도, 그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성령을 받자 그들의 눈에 이 불쌍한 영혼이 보였지요. 그래서 그를 주목하여 불렀고 그 영혼도 반응했어요. 아무 상관이 없던 관계가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지요.

6-8 베드로는 주저함 없이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구하는 은금, 먹고살 돈과 비교할 수 없는 전인적인 구원을 주려 했어요. 겉만 화려한 성전이 줄 수 없는 은혜와 구원을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담고 있어요. 사도들은 대리자로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을 베풀었지요. 비록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그분의 이름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앉은뱅이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 걸었어요. 그는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제자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사인 누가는 이 장면을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해요. 상식적으로 나면서 못 걸은 사람이 갑자기 걷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설사 일어선다 해도 제대로 걷고 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은 즉시 걷고 뛰었어요.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기적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지요.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세요. 평생 걷지 못해 사람들에게 들것처럼 옮겨져 매일 구걸로 연명하던 비참한 인생이었어요. 그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성령이 임하시고 생명이 들어가자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참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9,10 모든 백성이 이 기적을 보았어요. 걸으며 찬양하는 그가 바로 미문 앞 앉은뱅이임을 알고 몹시 놀랐지요.

이 기적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첫 번째 기적이에요. 이 일로 그들의 권위가 확증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하심이 나타납니다. 특히 성전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남으로써 새로운 성전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해요.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 되십니다.

이 앉은뱅이는 율법의 규정으로는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고, 구걸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인생이었어요. 이는 유대교의 절망적인 상태를 단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으니 참 예배가 회복될 것을 보여주지요.

성령님은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세요. 앉은뱅이가 즉시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한 것처럼 우리도 즉시로 절망에서 벗어나 참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구원을 향한 믿음도 없었던 이 앉은뱅이는 성령충만한 두 사도가 내민 손을 통해 생명을 얻었어요. 우리도 말씀으로 무장되고 성령충만하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내가 살아날 뿐 아니라 이웃을 살리기를 소망해요.

이웃을 일으키는 기적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52패밀리를 통해서도 많은 분이 후원하고 있어요. 어떤 분은 보육원에 대게를 보내주었고, 농사의 첫 수확을 고스란히 보내준 분도 있었어요. 이처럼 성전에 주저앉은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역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손 내밀어 보길 바라요.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게 중요해요.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 때 나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걸 봅니다. 이를 두고 한 목사님이 “강 건너 불 끄는 인생을 살라”라고 말했어요. 나와 아무 상관없지만 하나님이 시키시는 사명, 즉 강 건너 불을 끄다 보면 내 발의 불도 어느새 꺼져있다는 거지요. 이 비밀을 저는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답니다.

- 지남쌤 성경공부(사도행전), 이지남

† 말씀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 마가복음 9장 41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로마서 13장 8~10절

† 기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어 성령충만한 가운데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으로 인하여 선한 영향력을 나태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내가 일어서야 할 절망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를 선포하며 기도봅시다. 또한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생각해보고 어떻게 도와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