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에서 성탄 연극을 했습니다.
1막은 목자들의 이야기, 2막은 여관 주인과 마리아와 요셉, 3막은 모든 출연진이 나와 인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의 역할은 3막에 등장하는 요셉이었습니다. 한 마디 대사도, 특별한 역할도 없었습니다. 그저 지팡이를 들고 마리아 옆에 서서 아기 예수님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3막에 잠깐 등장하는 역할을 위해 저는 두 달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연습에 나갔습니다. 딱히 연습할 것도 없는 작은 역할이었지만, 그저 예수님 이야기에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무척 뿌듯하고 자부심이 컸습니다.
이제는 어릴 적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장면만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예수님 이야기에 기쁘게 쓰임 받으려 했던 그 날의 저를 예수님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을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합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이 장면은 500여 년 전 이미 약속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9
만왕의 왕이 택하신 것은 화려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였습니다.
그 나귀가 선택받은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우리도 나귀와 다르지 않습니다. 내세울 것도, 준비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쓰임 받는 근거는 자격이 아니라 부르심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오직 하나, 주가 쓰시겠다 하신 부르심 위입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 누가복음 19장 31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자격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택하셨듯, 오늘도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십니다.
- 예수님과 한 달 살기, 최상훈
† 말씀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 누가복음 19:31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무 자격도 없는 나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규정해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에 초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신 그 자리에 은혜 받은 자격으로, 쓰임 받는 기쁨으로 서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적용과 결단
나를 부르신 주님에게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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