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오랜 기다림 끝에 남편을 만나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였고 나의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러나 짧은 신혼 뒤에 이어진 우리의 결혼생활을 말해주는 한 단어는 부끄럽게도 ‘다툼’이었다.
사역자의 필수 연단 코스라고 할 만한 경제적 궁핍이 이어지면서 내 마음에 자주 시험이 든 까닭이었다. 땅에 사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겪는 ‘돈’ 문제, 그로 인한 관계 문제들, 그리고 내 정체성의 흔들림까지, 나는 성도들이 결혼생활에서 겪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겪고 또 겪으며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처음부터 땅의 것들에 내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대학 생활을 하면서, 말세에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어지고 재물을 쌓는 일이 나타난다는 말씀과 함께,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나 자신을 부인하려는 믿음의 실천을 묵묵히 감당했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받은 장학금도 학비가 없어 곤란에 빠진 어느 선배에게 내주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고, 대학 졸업 후 받은 첫 월급도 하나님께 자원하여 아낌없이 드렸다. 가난한 남편과 비닐하우스 한켠에 임시숙소를 마련해 상추와 오이를 뜯어 먹고 살 때도 나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로 생활의 고충들 앞에서 반응하는 나의 양상이 달라졌다. 웬일인지 그때부터는 돈이 없으면 그저 ‘내가 굶으면 되니까’라는 식의 단순한 대처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1999년 1월 3일에 일어난 일은, 그런 우리네 삶의 복잡성과 함께, 고난 속에 드러나는 나의 인간적인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시 남편은 해외선교사의 사명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한 뒤, 중앙대학교 제2캠퍼스 대학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었다. 그날 나는 교회에서 함께 신년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제 4개월 된 딸아이에게 젖을 먹이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무심코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나 내일부터 학생들 데리고 전도여행 가.”
우리가 살던 동네는 시골 마을이라 시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서너 차례밖에 다니지 않았다. 마을에는 변변한 가게도 없어서 장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어렵게 첫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그 추운 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움직일 수조차 없던 때에 남편은 이렇다 할 상의나 예고도 없이 다음날의 일정을 통보하듯 말하고 있었다.
“뭐라고?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데?”
항상 사역을 우선시하는 남편에게 나는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교회 일이 많으면 교회에서 자고 오라고 권하며 하나님께 충성되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그날은 남편의 소통 방식에 대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면서 남편과 함께하는 궁핍한 결혼생활이 견딜 수 없이 느껴졌다.
문득문득 나의 이런 어렵고도 괴로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채 사역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밉고 싫어졌다. 그날도 그렇게 참고 참았던 감정이 잔소리로 터져 나온 거였다. “미리 좀 말해주면 안 돼? 이 겨울 날씨에 애랑 둘이 어떡하라고? 도대체 왜 날 데려다가 이 고생을 시키냐고!”
그런데 정확히 그 순간, 내 말소리를 집어삼키는 엄청난 굉음이 온 집안에, 아니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쾅!!!! 보일러가 터졌다. 부엌 옆에 놓인 기름보일러가 맹렬히 타고 있었다. 화마는 새로 장만한 신혼살림을 하나씩 집어삼키며 창문으로 시커먼 연기를 내뿜어댔다. 불은 30여 분 동안 집 안을 다 태운 뒤에야 진화되었다.
남편과 함께 전도여행을 가기로 한 학생들이 화재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는 힘을 모아 하루 종일 화재 현장을 정리했다. 나는 아이를 업은 채 쓸 만한 물건들을 챙기다가 다행히 불길을 피한 결혼식 앨범을 발견하고는 시커멓게 그을린 겉면을 열었다. 아…, 거기에 4월의 덕수궁 궁내에 핀 산수유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신랑신부가 서 있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고였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기뻐하며 결혼한 지 이제 겨우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이를 업고 가까운 교회로 달려갔다. 예배당 의자에 앉자마자 말씀이 떠올랐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에베소서 5:22~24
성령께서 이 말씀으로 내 마음을 찌르셨다.
그것이 전도여행 일정을 전날에야 전한 남편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내 언어의 방식, 그 언어 속에 담긴 남편을 향한 내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성령의 책망에 나는 이내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아버지 하나님! 남편에게 복종 안 하고 사사건건 이겨 먹으려고 한 것, 용서해주세요. 말씀대로 살지 않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콧물이 쏙 빠지도록 엉엉 울며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뜻밖에도 내 입에서 감사의 고백이 이어졌다. 뇌리에 콱 박혀서 잊히지 않을 경고의 메시지를 이렇게라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이시라니.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징계가 있다는 것은 내가 이제 더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거망동하며 살지 않도록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내게 머무신다는 뜻이었다.
- 주의 영으로 살아나라, 최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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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 잠언 3:11~12
† 기도
제 마음에 가난과 현실의 무게가 더해질 때
원망과 다툼으로 반응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불평하고 사랑으로 섬기지 못했던 저의 교만을 깨뜨려 주시고 말씀 앞에 엎드리게 하옵소서.
징계 속에서도 저를 자녀로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감사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 적용과 결단
어려움이 올수록 말과 태도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제 마음을 점검하겠습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선택하며 겸손히 대화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징계를 원망이 아닌 은혜로 받고 회개와 순종으로 가정을 지켜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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