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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에서 잘 벗어나는 법!!

나는 누구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가?

 2026-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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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사역을 하던 시절,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교회로부터 집회 초청을 받았다.

전 교인 수련회 중 청소년 집회 설교를 부탁받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목사님을 만나서 인사하는데, 그의 당황하는 표정이 보였다. 그때 나는 수염(goatee)을 기르고 있었다. 한국 교회 목회자 가운데 수염을 기른 사람을 찾기 어려운 때였다. 그가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내 얼굴과 짐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목사님, 집회 전에 면도는 하실 거죠? 양복은 가지고 오셨죠?

 

그때까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말했다.

“아니요, 목사님, 수염을 이만큼 기르려고 몇 달을 고생했는데요….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를 겁니다. 수련회장에 오는데 양복은 왜 가지고 오나요?

양복 없어도 됩니다.

 

공항에서 수련회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수련회장에 도착하니 교육부 담당 장로님이 마중을 나와주셨다.

공항에서 보았던 어색한 인사가 이어졌다.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교육 담당 목사님에게 이상한(?) 눈짓을 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들이 내 수염을 몹시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항에서 들었던 질문이 이어졌다.

 

“목사님, 집회 전에 면도는 하실 거죠?

나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동일한 답을 반복했다.

“장로님, 얼마나 어렵게 기른 건데요.

몇 년은 길러보려고 시작한 겁니다.

 

담임목사님과 전체 성도에게 인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청소년 여름 수련회에 양복을 입지 않고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설교하니 그들에게는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1950-1960년대에 목회하시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헤어 펌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펌 머리를 좋아하지 않던 나이 드신 목회자들이 이런 설교를 빈번하게 했다고 한다.

 

“성경을 보면, 새는 주로 마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마귀가 여자들 머리에 둥지를 틀겠군요.

 

너무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는 과거의 일이다.

목사들이 못마땅해한다고 복음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언젠가 예배 후, 한 집사님이 딸을 데리고 기도를 받으러 사무실로 찾아왔다. 무슨 기도를 받기 원하시는지를 묻자, 딸이 문신을 하기 원하는데 하지 못하게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반대하는지 묻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가 그런 문신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딸에게 왜 문신을 원하는지 물어보자 “멋있잖아요, 목사님” 하며 웃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문신하면 지옥 간다는 설교를 들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딸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딸을 말려달라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집사님, 내가 우리 딸이 문신하는 것도 못 말렸어요.

큰애도, 둘째도 예수님 많이 사랑하는데 문신이 있어요.

이 아이들의 문화가 다른 거예요. 너무 영적으로 보려고 하지 마세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게 너무 많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시대와 문화가 있는 거예요.

 

딸에게도 말했다. “신중하게 생각해라. 나중에 지우려면 고생한다.

20대는 잠깐이면 끝난다. 평생 가지고 갈 게 아니면 말이야.

 

내 큰사위도 몸에 문신이 많다. 팔뚝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문신과 물레 위에 흙을 빚으시는 토기장이 되신 주님의 손을 보여주는 문신이 있다. 한국에 방문해서 교회에 올 때면 나를 배려한다고 긴 소매를 입는다. 성도에게 충격을 줄까봐 조심한다. 나는 사위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내 시대의 문화와 그들 시대의 문화는 다르니까 나 때문에 조심할 필요 없다고.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때 생기는 부작용은 외식과 형식주의다. ‘외식’이란 속과 겉이 다른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가장 영적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의 전통 자체가 율법을 더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전통에 도취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봐주고, 대할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자기의 종교성을 과시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그런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전통과 의식, 관습에 묶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신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만 의식하시기에 그분은 자유로우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흘러넘치는 곳에는 자유함이 임한다. 종에게는 없는, 친구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함이다. 원수에게는 없으나 자녀에게는 자유함이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녀이기에 아무에게도 종이 되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북이스라엘이 망하자 앗수르의 종이, 남유다가 망하자 바벨론의 종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 백성이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에게 주권적인 자유를 말씀하신 게 아니었다.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죄와 그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말씀하셨다. 로마제국의 속박은 로마보다 더 강한 군대를 가진다면 벗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죄의 속박은 어떻게 벗어버릴 수 있는가? 아들이 자유롭게 해주셔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자유함을 주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셨고, 복음이 되셨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죄의 사슬이 끊어지는 자유함이 임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죄의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살아가야 한다.

 

묶임은 율법이나 종교로 풀어지지 않고,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으로만 풀어진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죄의 굴레가 벗겨진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죄의 권세는 힘을 잃는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성도라면 죄로 얼룩진 과거로부터의 자유, 죄가 가져다주는 수치감으로부터의 자유, 죄의 결과 때문에 주어진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만난다. 말씀으로 주어지는 예수님의 자유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가볍고 쉽다.

  


- The 리턴: 예수께로 돌아가자, 김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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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32

 

† 기도

주님, 나의 시선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나의 시선, 기준을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 두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기뻐하실 일들에 집중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원합니다.

 

적용과 결단

오늘 내가 한 말과 행동은 다른 이들의 시선과 기준으로 행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기를 원하며, 다시금 주님께로 나의 시선을 두고 주님만 바라보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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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