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와 기도에는 동일한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내 안에 적이 있습니다.
기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의 가치를 알고, 더 나아가 기도의 능력과 응답을 믿습니다. 어려울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심지어 아무 일도 없을 때조차 기도의 부담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기도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왜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기도가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저항, 즉 기도를 방해하는 적 때문입니다. 우리의 혼적 게으름과 나태가 기도를 방해합니다.
우리는 등산이 건강에 좋고, 밥을 먹은 다음 바로 누우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밥을 먹고 벌러덩 드러눕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이 좋은 줄 알지만 근육에 저항이 있고 신체에 고통이 따르니까 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워합니다. 3시간짜리 영화도 시간이 금방 갑니다. 그런데 3시간 기도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3시간 기도하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안 하면 아무 일도 없지만, 기도하면 내 육체와 혼의 저항이 있습니다.
기도는 힘쓰는 것이지 기도가 저절로 밥 먹듯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기도가 왜 어렵습니까? 왜 기도가 영화 보는 것보다 어렵고, 체육대회보다 어렵습니까?
육을 가진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 앞에 머무르고 계속 엎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과 육은 서로 상치됩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역시 상극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이 영과 육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았으니 영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나의 육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 역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한탄한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한계와 죄성으로 인한 나태가 영적으로 유익한 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불러오기 때문에 기도라는 전투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기도하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와 똑같이 아프셨고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풍랑이 이는 바다 가운데 배에서 주무셨다는 것은 우리 주님이 얼마나 곤비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최후 기도를 하실 때 제자들은 다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과 억압이 심하면 더 피곤해지는 법입니다. 제자들이 잠든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깨우셨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때 예수님 역시 동일하게 피곤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쉬웠을 거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히 5:7)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힘들면 주님도 똑같이 힘드셨습니다. 주님도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승귀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이 땅에서 기도하실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쉬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계가 있는 육체를 벗으시고 차원이 다른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셨는지 땀방울이 빗방울같이 되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기도하시는 주님을 도와주었습니다. 힘들지 않는데 도와주나요? 그러나 천사도 힘을 북돋울 뿐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사역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외로운 그 길을 홀로 기도로 돌파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에 계실 때 예수님조차 기도하려면 강한 육체의 저항 때문에 힘드셨다면 우리는 오죽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만만하지 않고, 기도가 전투이며, 내 안에 기도를 방해하는 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기도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기도로만 돌파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기도로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이 영적 전투가 바로 기도입니다.
둘째, 영적 방해가 있습니다.
기도의 가치를 아는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고 공격합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하니까 엄청난 방해가 있었고, 바울의 전도여행에서도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공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공격에 대비하는데도 당하고 넘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결론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돌파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돌파하는 것입니다. 애꿎은 사람을 원수나 표적으로 삼지 말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포기하지 말고 기도로 전진해야 합니다.
셋째, 환경의 방해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사람을 통해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소리가 크다고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 소리가 크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나도 덩달아 큰소리로 부르짖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기도 소리와 방언은 귀에 거슬립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기도하는 것 같아도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방해하는 행동입니다. 과도한 괴성을 지르는 것은 부르짖는 기도가 아닙니다. 모두 기도하는데 혼자 찬송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런 기도의 방해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건강한 기도의 표징은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과 힘과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환경의 방해로는 지나치게 큰소리나 작은 소리, 찬송 음악, 지나치게 춥거나 더워도 잡념을 일으켜 기도에 방해가 됩니다. 이런 기도의 방해꾼을 제거해야 합니다.
- 너는 부르짖으라, 박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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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 에베소서 6:12
† 기도
하나님, 우리 안에 기도의 방해꾼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방해꾼을 제거하고 온전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 적용과 결단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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