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별로 친구가 없는 아이였다. 깨끗하지 못한 모습, 허름한 옷차림, 겨울이면 거칠게 터 있던 손등. 누구도 그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우리 반은 가끔 체육 시간에 풍금을 운동장으로 옮겨놓고 포크댄스를 췄다.
음악이 시작되면 남학생들이 같이 춤추기를 원하는 파트너 여학생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그 앞에 가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선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짝을 찾으면 즐거운 댄스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방과 후, 담임선생님이 나를 호출했다. 선생님은 다음 날 체육 시간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로 그 여자아이와 파트너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늘 마지막에 선택받는 아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 아이를 선택하는 학생이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잠도 설쳤던 것 같다.
내가 갈등했던 이유는 그 아이를 선택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선생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다음 날 체육 시간, 난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그 앞에 당당하게 서서 인사했다. 선생님 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다음 순서였던 친구가 그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당당히 다가가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 선생님이 몇몇 남학생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선생님의 지혜로운 계획이었다.
예수님을 믿게 된 후 그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예수님의 마음이 생각났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이. ‘사랑, 긍휼, 자비’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예수님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긍휼을 그저 어떤 대상을 향한 측은지심 정도로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예수님의 긍휼의 시작은 연민의 감정보다 훨씬 크고 깊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마 1:23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에서, 그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밝힌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긍휼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매우 고귀한 선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는 우리보다 못한 대상에게 연민을 느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긍휼을 가르쳐 주신다. 그분의 긍휼은 잠시 돕는 게 아니라, 떠나지 않고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의 긍휼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의 틀 속으로 스스로 들어오셨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육체의 한계 속으로 들어오셨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신데 인간의 3차원 한계 속으로 들어오셨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데 여자의 태 속으로 들어오셨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신데 어린아이의 몸을 입으셨다.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신데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평범한 사람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생명을 만드신 분이신데 죽음에 붙잡힌 육신을 입으셨다.
그렇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거하셨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긍휼은 그렇게 함께하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한 마을에 집회를 가게 되었다. 캄보디아계 미국인 선교사와 여러 지역을 다니며 집회했는데, 가는 곳마다 큰 감동과 은혜를 경험했다. 마을에 도착해서 우리를 마중 나온 목사님과 장로들을 보고 당황했다. 그들은 나병 환자였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박수 소리가 달랐다. ‘짝짝’ 소리가 아니라 주먹이 부딪히는 투박한 소리였다. 설교하러 올라갔는데 눈앞에 앉아 있는 성도들의 얼굴이 성한 곳이 없었다(그때까지 나병 환자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선풍기도 없는 교회에서 긴 시간 설교를 마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예배를 마친 후, 성도들이 밥을 먹고 가라고 우리를 초청했다. 선교사님이 내 귀에 대고 “목사님,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병 환자들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기에 “먹어도 되는 겁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선교사님은 “목사님이 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고 교제한다면, 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될 겁니다”라며 걱정하지 말고 식사하고 가자고 했다. 함께 밥을 먹겠다고 하자, 여성도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고 어디서 잡았는지 두 손에 개구리 여러 마리를 들고 와서 보여주며 맛있게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 그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요리를 먹었다. 밥에 비벼서 열심히 주는 대로 다 먹었다. 밥을 먹으며 눈물이 자꾸 흘렀다.
‘나는 이들에게 이런 사랑과 섬김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내가 뭐라고 이들은 함께 식탁에 앉은 한 외국인 목사 때문에 이렇게 기뻐하는가?’
그들에게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었다.
낯선 외국인 목사를 그들의 교회로, 식탁으로 초대하고 환대함으로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었다. 잊지 못할 식탁교제였다.
예수님은 거하시기 합당하지 않은 누추한 곳으로 임하셨다.
그런데 기뻐하셨다. 그분은 영광을 벗으시고 초라함을 입으셨다.
그래도 기뻐하셨다. 주님은 보좌에서 내려와서 흙 묻은 말구유로 임하셨다.
그래도 기뻐하셨다. 그분이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긍휼과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기에, 주님의 오심을 감당하지 못할 우리와 기쁘게 거하신다.
- The 리턴: 예수께로 돌아가자, 김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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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마태복음 1:23
† 기도
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곳이라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좋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 사랑을 전하기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주님, 긍휼한 마음을 내게 부어주시길 간구합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께서 부어주실 긍휼을 간구하며 내가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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