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arrow
prev-arrow
post-title

하나님. 왜 아버지를 고쳐주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나는 화가 났다.

 2025-11-30 · 
icon 25349 · 
icon 1508 · 
icon 258
그분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몹시 화가 났다. 나는 성실하게 약속을 지켰다.


계약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주님이 부르신대로 브라질에 선교사로 가면 그 대가로 하나님이 아버지를 고쳐주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의 진단 이후 선교사로 떠날 계획을 포기하고 아버지 곁에 남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한 편지에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나는 죽음이나 영원이 두렵지 않다.

그러니 브라질로 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렴.”


하지만 나는 떠나기 전에 하나님과 합의를 보았다.

내가 아버지와 보낼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면, 그 대가로 하나님은 의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실 것이다. 우리 아버지를 고쳐주실 것이다. 그 결과는 엄청난 증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삶을 내려놓은 선교사의 아버지를 고쳐주셨다.”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고 앞으로 우리 교회에는 수십 년간 이 미담이 전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나, 둘 다 이기는 최상의 전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다. 우리는 청원 휴가를 얻어 텍사스로 돌아왔다. 급히 달려간 병원 중환자실에는 부쩍 약해진 아버지가 삽관술을 하고 누워 있었다. 들끓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날 밤, 자갈이 깔린 맨땅을 쿵쿵대며 왔다 갔다 하면서 불만을 털어놓았다.


“제가 브라질에 안 갔습니까?”

정적.


“가족들도 다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까?”

정적.


“제가 약속을 어겼습니까?”

정적.


“그런데 왜 우리 아버지를 고쳐주지 않으십니까?”

정적.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합의는 내가 꾸며낸 상상에 불과했다. 서명은 한쪽만 했다. 그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내 오해를 드러냈다.


며칠 전에 어느 젊은 부부를 만났는데 부부의 어린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내가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 아이는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있었다. 중환자실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부부의 눈에서 슬픔이 아닌 분노,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감지했다.


아이 아빠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 아들을 데려가신다면 다시는 그분을 믿지 않을 겁니다.”


아내도 입을 꾹 다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이들의 슬픔을 나무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누구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시느냐에 따라 믿음이 좌우된다니.


토저(A. W. Tozer)는 이렇게 썼다.

“인간을 그냥 내버려두면 우리는 그 즉시 하나님을 관리 가능한 용어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분을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그분을 데려가기 원하거나, 적어도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할 때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기 원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신을 원한다.”


하나님이 램프를 문지르면 나타나는 지니라는 생각, 하나님이 비밀번호만 정확하게 치면 내주는 현금 인출기라는 생각, 우리가 하나님과 거래했기 때문에 그분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하늘의 요정이라는 생각은 거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책임지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의존적인 하나님으로 바꾸어버렸다.


이런 거래 신학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환멸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나보았는가?

“나는 오래전에 하나님을 버렸어요. 아이가 아팠거든요.

‘하나님, 거기 계신다면 우리 아이 좀 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내가 아는 한, 하나님은 없어요.”



사실은 이렇다. 하나님께 화를 내는 사람은 대부분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이유로 화를 낸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갈망하거나 기대하거나 요구한 것을 그분이 주시지 않았기에 화를 낸다.

자신에 대한 경외심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대체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당신의 주님이 아니라 당신과 계약한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나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선교사로 섬기는 일이 초자연적인 치유와 맞교환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시무시한 자만이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확실히 들으신다. 우리 간구를 내치지 않으신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한 것은 옳았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순종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일을 하실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

인간의 손과 발과 눈을 취하셨다. 심지어 피조물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외면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은 절대 대가성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하나님은 나의 아빠를 고쳐주셨다. 이 땅에서는 아니지만,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말이다. 아버지야말로 아들의 기도에 최고의 응답을 받았다고 그 누구보다 먼저 고백할 사람임을 나는 확신한다.



-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맥스 루케이도



† 말씀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이사야 55:9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 시편 27:1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히브리서 11:24-26


† 기도

하나님.제 안에 하나님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제가 잘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가르쳐주시옵소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주님의 시간을 잠잠히 기다리는 우리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을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자기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많이 위독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선생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라고 가르쳐주었답니다.


그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기독교는 가짜구나.' 하며 떠났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좋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의 긍정의 힘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슬픈 마음을 토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부분들이 있다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본 테마는 2023년 11월 27일 앙콜테마입니다.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