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하나가 1장 9절에 처음 나왔던 ‘해 아래에 새것이 없나니’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도 중간중간 보셨지요?”
“예.”
“3장 15절에도 표현은 다르지만 반복됩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사람은 새것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이미 옛적에 시도되었던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질서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그 틀을 넘는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 좀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거의 반복되는 삶을 삽니다. 그러면 오늘도 그 삶이 반복될 것을 알고 사는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다른 날과 다르게 한 뭔가가 있나요?”
“거의 똑같은 일의 반복이지요.”
“저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는 후회하고 미래는 불안하게 여깁니다. 반복되는 삶이니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수를 반복합니다. 전에 했던 실수니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실수를 반복하니 참 후회스럽죠. 그리고 미래에도 반복된 삶을 사는데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불안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해요. 한마디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 믿지 못하는 겁니다. 인간이 이렇게 연약합니다.”
“솔로몬은 그런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3장 16절 이하에 신랄하게 드러냅니다. 16절에서 솔로몬은 ‘재판하고 정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정의가 세워져야 하지요. 그런데 솔로몬이 그렇지 못한 실상을 고발합니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상의 재판에 100퍼센트 공정이 있을까요?”
“아닐 것 같은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가면 안 되는 곳이 법원’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재판을 받는 사람도 사람이 심판하는 곳에 완벽한 공의는 없다는 걸 대충은 예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악이 있어 너무 굽게 판단하면 심하게 억울한 일이 생기는 거지요. 이건 인간의 불완전성과 상대성을 지적하는 겁니다. 바로 위 3장 14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완전성과 영원성에 대비됩니다.”
“17절과 18절은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색깔로 표시할 테니 잘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17절과 18절이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이라고 같은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17절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라고 하고, 18절은 ‘하나님이 시험하신다’라고 합니다. 그 대상에 대해 17절은 ‘의인과 악인’이라 하고, 18절은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라고 했습니다. 거의 비슷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마지막은 각각 다릅니다.
17절은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다’라고 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종말의 시간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 18절은 그 심판을 통해 드러나는 내용을 말합니다. ‘인생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라는 거지요.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 영원한 그분의 심판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는 인생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인간이나 짐승이 똑같이 당하는 일들을 들어 증명하고 있습니다. 19절에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둘 다 호흡을 하다가 똑같이 호흡의 종지(終止)로 죽는 걸 말합니다. 20절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다 흙으로 지음 받아 흙으로 돌아간다는 걸 말합니다. 21절에는 사람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고 하는데, 그걸 누가 확실하게 알아서 증언할 수 있겠냐는 수사의문문입니다.”
“저는 평소에 21절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이 구절이 수사의문문이었군요. 그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네요.”
“22절은 솔로몬이 ‘해 아래에 새것이 없다’라는 것만큼이나 중간중간 반복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라는 거지요.”
“앞에서 나왔던 내용이네요.”
“예, 그것이 ‘인간의 몫’이라고 하는데, 신약의 표현을 빌리면 로마서 12장 3절에 나온 ‘각자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행하라는 거지요. 그게 인간의 본분이라는 겁니다.”
“22절 마지막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의 사후에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그를 다시 세상으로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를 하고 재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큰 틀인 시간과 공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큰 틀 안에서, 일상을 반복하며 살도록 하신 작은 틀 속에서 사는 작은 존재임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혹시 3장의 내용 중에 질문 있으세요?”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헛됨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하고 있는 거네요.”
“맞습니다. 또한 그 크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유일한 구원임을 말합니다.”
“그동안 전도서를 읽으면서도 미심쩍었는데 이렇게 한 절 한 절 들으니 이해가 되고 풀리는 것 같습니다.”
- 대화로 푸는 전도서, 강신욱
- 이 책에서 선정된 문장을 써보세요 ♡
(태블릿 / 종이출력 모두 가능)
대화로 푸는 전도서 20선 쓰기 PDF
→https://mall.godpeople.com/?G=1698114736-4
더 다양한 은혜문장필사 보기
→https://mall.godpeople.com/?GO=grace_sentence
† 말씀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 시편 147편 5절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 역대상 29장 11절
† 기도
하나님, 반복되는 매일의 삶 속에 오늘도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뛰어나다 할지라도 위대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는 늘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시기에 연약한 저와 함께하여 주소서. 지켜주소서. 도와주소서.
† 적용과 결단
반복되는 삶 속에 우리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으나, 다시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불안해하죠. 인간은 이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큰 틀 안에 오늘도 작은 틀로 살아내는 우리 모두 불안에만 떨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보호하심을 간절히 기도합시다.
† 함께 보면 더 은혜로운 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