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니 마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가야 하는 교회도 안 가도 되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이 자유로운 20대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유를 찾아 나온 것처럼 예배는 뒷전이고 어쩌다 마음에 부담이 생길 때면 근처 교회를 찾아 마치 찜찜한 마음을 달래듯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그때, 인생에서 두 번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함께 취업해서 온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때 1년 넘게 같이 방을 쓰던 친구가 언제부턴가 매일 저녁, 퇴근 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담배도 피우고 술 먹고 들어오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반복해서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들어오니 날이 갈수록 궁금해졌다.
그래서 하루는 왜 저녁마다 나가냐고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오는 것 아닌가?
”나 교회 가서 기도하고 왔어.”
“그럼 매일 교회에 갔다는 거야?”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나 교회 다녀.”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교회를 다녔어도 내 삶의 모습은 친구들에게 그저 비아냥의 대상일 뿐이었기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교회 다닌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기는커녕 어디에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지도 않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온다니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그 친구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워서 교회 가서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하나 있는 동생이 백혈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며, 동생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괴로움에 바닷가에 가서 술도 마셔보고 절에도 가서 서성이다 담배만 피우다 오곤 했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포만 바닷가를 거닐다 우연히 상가 2층에 있는 교회를 발견했는데,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앉으니 한없이 눈물만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아서, 누가 뭐라 하지도 않고 아무도 없는 그 교회를 밤마다 찾아가서 혼자 울다가 온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하니까 내가 살겠더라.’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이 멍하고 하얗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도 열아홉 살에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멀고 먼 거제도로 내려와 외롭고, 마음 한편으로는 아직 어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집도 걱정되고 부모님도 그리워서 남몰래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치곤 하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고 세례도 받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던 내가 그것을 감추고, 믿지 않는 친구들보다 더 세속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더 나아가, 교회를 안 다니던 그 친구보다는 그래도 뭔가 조금은 하나님을 더 아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 친구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사실 나, 교회 다녀.”
친구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의 눈에 그동안 내 행동과 삶의 모습은 교회를 다닐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내일부터 같이 그 교회에 가서 동생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라고 제안했고, 친구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거제도 옥포 해안가의 작은 상가 2충에 있는 교회는 내가 스스로 그 친구와 함께 첫발을 디딘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에 가서 함께 기도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는 머리로는 성경과 기도에 대해 적어도 그 친구보다는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나름 기도도 가르쳐주고, 성경도 같이 읽었다.
그러다 만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우리를 구역에 편성해 주신 덕분에 구역모임에도 함께하게 되었다. 구역장 집사님과 함께 구역예배도 드리고, 매주 주일성수도 하면서 점차 신앙이 자라나게 되었다.
몇 달이 흘렀다.
친구의 동생이 기적적으로 낫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생은 결국 생을 마감했지만, 친구는 이제 동생의 죽음을 담담히 맞을 수 있었다. 그 죽음은 끝이 아니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친구는 동생이 시한부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죽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던 그에게 그 몇 달은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시간인 것 같았다. 그 시간은 부활의 신앙을 갖기에 충분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겨낼 힘을 주셨다.
어쩌면 아픈 기억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 일을 통해서 친구는 신앙을 갖게 되었고, 나는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 일은 20대 초반의 내 인생에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최기수
† 말씀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 룻기 2: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요한복음 11:25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 시편 62:8
† 기도
주님. 주님을 떠나는 것이 해방이라고 착각했던 지난 날.
얼마나 헤매고, 목말랐는지요. 헤매는 우리 영혼들이 있다면 목자이신, 진정한 생명수이신 예수님께 나아오게 하소서. 진정한 위로, 진정한 자유, 진정한 구원의 길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아름답고, 하나님이 듣기 좋아하시는 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기도는 진실하고 겸손하게 다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요’
나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니까요. 말이 안 나오면 하나님 바라보고 앉아만 있어도 됩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붙드시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 본 테마는 2023년 10월 23일 앙콜테마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