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arrow
prev-arrow
post-title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자아가 살아있던 베드로는 심지어 예수님도 꾸짖었다!

 2023-08-31 · 
icon 13612 · 
icon 699 · 
icon 137
베드로는 자기 생각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자 예수를 붙잡고 항변했다.

[마 16:21-22]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항변했다’의 헬라어 원어는 “야단치다, 꾸짖다”라는 의미다. 즉 “예수님, 그게 아니고요. 이렇게 하셔야지요!”라며 예수를 가르치려 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많은 경우에 예수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가?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기도했으면 적어도 이렇게 해주셔야지요!” 이렇게 예수께 항변한다. 예수를 가르치려 했던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 자아가 다루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또한 베드로는 혈기 왕성한 사람이었다.

[요 18:10-11]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위기에 처하자 베드로는 바로 칼을 빼어 휘둘렀다.

이 열심은 예수님을 위한 열심이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심이 있었다. 칼을 빼어 싸울 정도로 특별한 열심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께서 바로 그 옆에 계셨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루기 원하시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저 칼을 빼서 휘두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런 열심은 베드로 스스로의 열심이었고, 자기 힘을 의지한 열심이었다. 자아가 다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이처럼 ‘나의 힘’을 의지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겨도 ‘나의 힘’으로 섬긴다.


많은 크리스천이 베드로처럼 칼을 빼어 든다.

“나의 힘과 나의 능력을 주를 위해 휘두르리라!”라고 하며 마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한(?)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한다.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구원한다니? 뭔가 이상하다. 자아를 사용하여 주를 섬긴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복음서의 마지막에 보면 전혀 다른, 낯선 베드로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요 21:17-18]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근심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보인다.


“그럼요, 사랑하고 말고요! 저보다 믿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칼도 빼어 들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근심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아시지 않습니까….”


풀이 다 죽었다.

사실은 풀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아가 죽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자신의 모습 앞에서 자아가 부인된 것이다. ‘아, 나는 이런 존재구나! 이것이 내 본 모습이구나!’라고 베드로가 자아를 직면한 것이다.


이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께서 예언하신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다시 말해 끌면 끄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아가 부인된 모습이다. 칼을 빼어 휘두르던 베드로가 끌면 끄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다니는 자로 변화된 것이 느껴지는가?


이 ‘느낌’을 기억하기 바란다. 자아가 살아있는 모습과 자아가 부인된 모습의 대비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베드로의 자아가 다루어진 것이다.


오해라고 억울한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했는가?

자아의 현실이다.


종의 형체가 되기를 선택하라.

그리고 세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부르짖으라. 


그때 성령께서 일하시기 시작한다. 우리의 자아를 부수시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 안에, 그리고 내 삶에 행하신다.



- 케노시스 : 자기비움, 고성준


- 이 책에서 선정된 문장을 써보세요 ♡
(태블릿 / 종이출력 모두 가능)

케노시스:자기비움 20선 쓰기 PDF
→ https://mall.godpeople.com/?G=1688965555-9 

더 다양한 은혜문장필사 보기
→ https://mall.godpeople.com/?GO=grace_sentence 



† 말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누가복음 9:23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요한복음 15:5


† 기도

주님. 하나님을 나의 주인님이라고 말하지만, 기도제목도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렸던 것을 고백합니다. 주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묻지도 않고 해버렸던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하오니 주님, 이제부터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처럼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입으로는 "하나님은 나의 주인님"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예수님을 이끌고 있지는 않았나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사랑하다고 말하는 베드로처럼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선택이 예수님의 길을 막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이 시간 잠잠히 주님께 고백합시다.

"주님. 저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제 선택을 받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저의 평생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 함께 보면 더 은혜로운 영상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