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천재이자 석학인 이어령 박사는 어떤 마지막 말을 남겼을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내용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구전 노래에 대한 것이었다.
떠나면서 유언처럼 남기는 말이 ‘원숭이 엉덩이’라니, 이런 게 대가의 달관일까 생각하며 책의 내용을 보는데, 우리에게 ‘원숭이’는 자신과 다른 타인, 즉 자신과 비교가 되는 외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서구 문물이 들어와 우리의 무기며 우리의 문화가 그들의 것보다 열등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그것을 비하하며 우습게 여기는 미묘한 감정이 투영된 게 바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거였다.
우리와 별로 접촉점이 없었던 유대인들은 동서 유럽인들에게 마치 원숭이 같은 취급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어느 나라에 들어가든 자신과 비교했을 때 그들이 똑똑하고 그 자녀들은 학교에서 성적도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 능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루고 점점 부를 쌓아가는 ‘그 원숭이들’을 보며 속 끓이던 사람들은 결국 폭발하게 되고, 유대인을 향한 핍박, 추방, 학살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것은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사건에 도달하게 된다. 형 가인이 그토록 노력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얻은 농사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양 한 마리를 드린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여기에 분노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는 이야기는 ‘그게 속상하기는 해도 사람까지 죽일 일이냐’고 생각했던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다.
그러면 어떻게 이 형제 살해의 저주를 끊을 수 있을까? 간과 쓸개를 다 내놓고 무조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조아리는 것이다. 형제 사랑이라는 것은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에서 열등감이나 오랫동안 부당하게 당해왔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을 가졌던 쪽은 에서였다. 그러나 야곱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쌍둥이 형에게 “주여!”라고 외치며 엎드렸다. 야곱이 긴긴 여행 끝에 찾아내야 했던 것은 바로 자신의 형제보다 더 낮아져서 엎드리는 바로 그 곳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_창세기 33:10
실제적으로 이스라엘과 이방 교회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자존심과 관련된 여러 잡음들이 들리기도 한다. ‘좋은 마음으로 연합하고자 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거만하더라’와 같이 자신이 조금이라도 무시당하고 낮아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되려는 생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환도뼈와 같은 내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연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유럽 등 해외로 진출한 운동선수들이 ‘원숭이’라는 인종 차별성 야유에 시달리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 갖고 있던 동양인에 대한 신체 능력 차이에 대한 우월의식에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실제로 연합의 중요한 지점에서 장애가 되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원숭이 취급하게 했던 대적의 주술이 여기에 아직도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이것에 관해서 이미 예수께서 지혜로운 전략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바로 선제적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면 기분이 아주 안 좋지만, 내가 일부러 먼저 낮은 곳에 내려가면 오히려 큰 승리감마저 느낄 수 있다.게임의 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더 낮은 곳에 있다는 게 승리가 되는 게임으로 판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대적의 룰은 반대로 내가 남보다 더 위에 올라가야 이기는 게임이다.
유대인들과의 연합은 물론이고 부부의 연합이나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낮아지고 져주고 심지어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반걸음 앞서서 내려가 있으면 큰 연합의 승리를 얻을 수가 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누가복음 14:10-11
나의 존귀함은 ‘원숭이’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나를 존귀하게 창조하시고 천지를 지으시기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을 통해서 확보되는 것이다.
‘한 새사람’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규정 짓는 세상의 법칙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그것은 바로가 만들고 싶어 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세상이다. 우리는 그 비교의 애굽에서 탈출해야 한다. 교회는 피라미드의 계급 구조가 아닌, 하나하나의 지체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몸의 구조’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_ 고린도전서 12:22-25
몸의 지체가 서로에게 우월하고 열등하고가 어디 있겠는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깨닫게 될 때 한 새사람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 한 새사람, 강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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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그는 근본 하나님의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장 6-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태복음 20장 28절
† 기도
하나님, 제 안에 조금이라도 무시당하고 낮아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낮아지심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모습을 기억하게 하소서. 진정한 승리와 연합은 내가 먼저 낮아지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며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나의 존귀함은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규정 짓는 세상의 법칙에서 빠져나와 우리를 존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소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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