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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로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하다.

 2023-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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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망한 사람이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본 사람은 망한 사람이다. 이사야는 너무나 놀랐고, 그의 모든 세계는 갑자기 녹아내리면서 방대하고 영원한 어둠으로 변했다. 그는 안색이 붉고 검게 변한 채 그 어둠에 저항했고, “나는 …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탄식했다.


그런데 이사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살인자, 거짓말쟁이, 모주꾼이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교양 있고 세련된 젊은이였다. 왕의 사촌이었고, 자기의 노력으로 시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같으면 아마 선교위원회의 위원 같은 자리에 선출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절반만큼이라도 선해지기를 본능적으로 바란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형상 앞에서 우리 인간은 누구나 별수 없다. 인간의 지극히 순수한 도덕성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라는 이사야의 외침에는 ‘지금 나는 창조주의 거룩하심과 완전히 대조되어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체험하고 있다’라는 의미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외침에는 고통의 울부짖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겉모양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미는 전도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의 부르짖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면적 출생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우리 자신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체험이 없으면 우리의 회개는 깊은 것이 못 되며, 우리의 회개가 깊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체험도 깊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가 고통 중에 외쳤지만, 그 외침이 그의 행위 때문이라고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단 하나의 죄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도 이사야처럼 더러운가?”라고 묻지 말고 “우리도 이사야처럼 우리의 더러움을 깨달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는 깨끗하지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그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 세상은 더러우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불결함을 알지 못하는 것, 불결함의 무서운 결과를 즉시 맛보지 못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세상의 문제이고, 교회의 문제이며,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다. 우리는 더러우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더러우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담대하고 자신감 넘치며, 자신이 거룩하다고 느끼고, 거짓된 자신감에 빠져 있다.


우리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성경의 신학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믿음과 내적 조명을 통해 성장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조금이라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패가 없을 것이다. 언제나 나는 인간의 부패성을 주장하는 신학을 믿어왔다. 인간의 부패성에 대한 교리는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프랑스 태생의 종교개혁가 및 신학자)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칼빈보다 훨씬 이전에 다윗이 그것을 언급했다. 인류 최초로 태어난 아기도 부패한 상태로 태어났다.


당신은 “부패한 사람은 창녀나 세리 같은 사람들 아닙니까?”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나는 창녀나 세리 같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부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의 눈에 쉽게 보이는 부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문제 삼는 부패는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에서 나타나는 부패, 성도들 중에서 나타나는 부패, 자칭 ‘큰 자’라고 하면서 신문에 얼굴이 실리는 사람들의 부패,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이런저런 것들을 명명하는 사람들의 부패다.


이사야는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의 도덕적 순결이 회복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악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로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 자신이 이사야처럼 낮아지는 체험을 한 후, 또 핀 숯이 우리의 입술에 닿아 과거의 깊은 죄악을 용서받은 후 우리는 우리의 지극히 악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우리의 행위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의 죄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만져주면 우리는 도덕적 순결의 회복과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그전에 하셨던 말씀, 즉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라는 말씀을 다시 하셨고,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말씀드렸다.


이사야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사야는 자신의 도덕성에 절망했다. 우리는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목회를 하면서 누구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는지 당신은 아는가? 또, 내 목회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정결케 하는 체험이 이사야에게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용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보내셨다.


- 하나님 임재에 압도되다, A.W.토저



† 말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고린도전서 15장 10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난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장 8절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악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로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낮아지게 하소서. 악함을 인정하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가 나를 만져주심으로 나는 회복되며, 그 용서의 사랑으로 소생되는 존재임을 늘 고백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이 시대는 더러우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처럼 우리의 더러움을 깨달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당신은 자신의 더러움, 악함을 깨닫는 자입니까?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