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에 대한 고찰 (행8:26-40)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이전에는 각 장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
묵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그런지...
3천명, 5천명을 회심시킨 <베드로>,
순교의 자리에서도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스데반>,
더럽혀진 땅 사마리아까지 가서
복음을 파워풀하게 전한 <빌립>,
수차례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에 목숨걸고 헌신했던 <바울>...
이들의 삶의 '결과'에만 주목하다보니
그 '과정' 가운데 일하신 성령의 역사를
항상 놓치고 지나쳐 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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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은 초대교회 일곱집사 중
<빌립> 집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행8:5-6)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8-39)
위 두 말씀이 빌립에 대해
최종적으로 말해 주는 '결과'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더럽혀진 땅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킨 빌립...
이방인이었던 에디오피아 내시
한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
그 자리에서 회심시켜 세례를 받게 한
대단하고 놀라운 빌립...
이렇게 빌립의 삶의 결과만 묵상하면
그의 삶이 대단하고 놀랍다는 감흥외에는
내 삶에 곧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별다른 실제적 유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유익을 찾는다고 한다면,
빌립처럼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의무'...
빌립처럼 사마리아같은 가기 싫은 곳에도
자기를 굴복하고 가서 전도해야 한다는
거룩한 '사명감'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감, 사명감만으로는
주님의 제자와 일군된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오셨는지에 대한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나도 빌립처럼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빌립이 처음 일곱집사로
택함을 받아 섬기게 된 것은,
물론 그가 성령충만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선발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열두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들이 일곱집사였습니다.
다시 말해, 빌립은 적어도
말씀을 전하는 면에 있어서만큼은
사도들에 비해서 특별한 은사가
두드러진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사도가 아닌
스데반 집사의 입술을 통해
유대인들의 마음을 찌르는
날카로운 설교가 가능했던 것이나,
말씀의 은사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빌립 집사의 입술을 통해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회심하게 된 것은...
이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일임을 명백하게 입증해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핍박이 나게 하심으로
여기저기 쫓기고 도망다니다가
사마리아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령께서
빌립으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오늘 본문의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도,
빌립이 처음부터 치밀한 선교 전략가운데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계획과 작정을 하고 전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시하신 곳에 이끌려 가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었고
마침 그 시점에 내시가
이사야 53장 말씀을 읽고 있어서
함께 마차에 올라타서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개연성이 없고
두 사람의 지위나 계급도 전혀 맞지않는
뜬금없고 쌩뚱맞은 만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만남이 회심과 거듭남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이면에 부지런히 역사하고 계셨던
성령님의 일하심과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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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행8:39-40)
에디오피아 내시가 세례를 받고 나서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가셨고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결론...
한마디로 빌립의 삶은
성령께 붙잡힌 바 되어
여기저기 이끌려다니며
쓰임받는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피하여 '살기 위해' 도망나온
사마리아 땅에서
전도인의 삶을 살게 하시고,
말씀의 은사가 없어서
허드렛일을 잘 섬기는 집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입술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로 쓰임받게 하신...
성령님의 기이한 섭리와 역사 앞에서
결코 빌립은 자랑할 게 없었을 겁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자격없는 자들을 불러서
그들의 부족함과 한계와는 상관없이
거침없이 일하시는,
성령님의 기가 막힌 일하심을
섬세하게 목도할 수 있음이 은혜입니다.
오늘도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시해 보이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일상의 기적들을 만들어가시는
성령님께 붙잡혀서
빌립처럼 이끌려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적용>
주말동안에 그동안 게을러서 추진하지 못했던 66권 성경공부 자료들을 만드는 일에 올인해야겠습니다. 자료를 만들면서 그동안 큐티를 통해 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계수하며 동행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죄와 사망의 음침한 그늘 아래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로 살아가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찾아와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당신의 자녀삼아 주셔서 그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성부하나님, 나 한 사람 살리시려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신 성자 예수님, 더럽고 누추한 제 마음에 흔쾌히 내주하셔서 영원토록 거하시겠다고 좌정하신 성령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오늘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아갑니다. 제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자랑거리는 저와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제 삶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맺게 하시는 크고 작은 결과물들은... 제가 붙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은혜의 선물임을 배웠습니다. 오늘도 24시간 저와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에 집중하여 한 자락의 음성도 놓치지 않고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저의 눈과 귀를 열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블로그
https://blog.naver.com/gomting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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