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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걸음

“하나님을 위해 꿈꾸는 것은 무력하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2025-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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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동생의 권유로 ‘경배와 찬양’ 수련회에 참석했다.

동생은 언니의 방황과 슬픔을 종식할 유일한 방법이 자신이 앞서 경험한 영적 평안을 누리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꽤 오랫동안 나를 이 수련회에 데려가기 위해 준비했었다.


당시 나는 거부할 수 없는 동생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참석을 결정했다. 

출발 당일, 수련회장으로 향하는 긴 이동 시간 동안 내내 나는 충만한 헌신자들 사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대중 가수의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창밖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신경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에 짐을 풀고 첫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향할 때까지도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예배당으로 가는 완만한 언덕을 오르는데 누군가 내 등짝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만 좀 해라!”

동생이었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는 듯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나는 태연히 받아쳤다.


“예배당에 들어가면 어차피 못 들으니까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들을 거야.”

결국 나는 동생의 호통과 신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련회 장소에서도 대중 가수 듀스의 음악을 흥얼거리며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차피 들을 수 없으니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듣겠다던 내 말은 적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다른 노래를 찾지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시작이었다. 완전히 다른 삶의 시작. 


예배당으로 향하던 그 언덕길의 걸음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그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생에 한 번쯤 찾아올까 말까 한 운명적 만남과 경험을.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분은 약속대로 당신의 백성의 찬송 가운데 계셨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지금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라는 이 한 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 한 줄이 어떻게 읽히고 해석될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유한하고 미약한 우리 존재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 말이다.


이것이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한 줄의 글을 적어 내려가길 망설이면서 문득 나는 바로 이 행위가 이 경험을 가장 잘 표현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 그분의 임재라는 것!’


우리의 존재가 어떤 초월적 힘과 사건에 직면할 때 종종 ‘억’ 하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을 ‘말문이 막힌다’라고 표현한다.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사고 회로가 잠시 큰 혼란을 겪는 것.

미처 사유와 언어로 주워 담을 수 없는 경험. 

따라서 침묵과 경배가 그분의 임재 앞에 선 인간의 영적 본능이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본능적으로 멈췄다.

그분의 영광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숨을 쉬는 듯했다. 완전히 새로운 호흡이 불어넣어졌다.

영혼에 생명의 들숨이 채워졌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막 나온 갓난아이처럼 새로운 숨을 내쉬며 깨달았다.


‘아, 이것이 진짜 삶이구나….’


이전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던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실체로 내 앞에 계셨다. 

그분은 존재 자체로 완전하셨고 숨 막히도록 압도적이었다. 

엄청난 환희와 기쁨이 내 전 존재에 번져갔다. 이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그 영광을 맛보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났다’라는 의미를 결코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내 존재가 소멸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토록 나를 누르던 자아와 인생의 무게가 한순간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 기적은 예배하는 내 영혼에 베풀어졌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도 제한받지 않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만으로 언제든 영원하고 순전한 기쁨에 잠길 수 있다는 사실에 소망이 생겼다.


그분의 위엄과 존귀와 광대하심과 아름다움 앞에서 인생의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그분을 예배하는 기쁨만이 가장 실체적이고 무한한 행복이었기에 삶의 다른 목적은 멀리 물러갔다.


단 한 번의 운명적 예배 이후, 내 영혼을 관통한 사랑을 느꼈다. 

이 사랑은 사랑하기에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던 이전의 사랑 공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사랑은 ‘완전’했다. 단 한 번의 예배로, 그때까지 내 속을 가득 채웠던 두려움 없는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과 결핍이 완벽히 채워졌다. 영혼의 빈 잔이 넘치도록 채워진 것이다.

나는 이 사랑의 절정에서 결단했다.


‘내 삶을 여기에 걸어야겠다….’

-여섯 걸음, 원유경




† 말씀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 시편 63편 4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 시편 63편 1절


† 기도

아버지 하나님, 내 심장 깊은 곳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예배를 향한 그치지 않는 갈망함이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향한 강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일하소서. 주님으로 인해 내 영혼의 빈 잔을 넘치도록 채우소서.


† 적용과 결단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도 제한받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만으로도 순전한 기쁨에 잠길 수 있다는 사실, 당신은 알고 계신가요? 삶의 힘듦과 여러 목적 아래 오늘도 버거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만이 가장 실체적이고 무한한 행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 테마는 2023년 5월 8일 앙콜테마입니다.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