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정된 중심에 대해서는 상대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고정된 중심에 대해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절대적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그분이 자신의 이름을 인류에게 알려주기 원하셨을 때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으실 수 없었다(출 3:14 참조).
선원이 바다에서 태양의 고도를 측정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의 도덕적 위치를 판단해야 한다.
하나님을 찾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그분을 그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나가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이런 짓들은 다 쓸데없다.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그분이 바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무한한 기쁨의 근원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분을 공경하며 그분께 감격하는 시간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 거룩한 시간에는 그분이 변하실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을 출발점으로 삼자. 모든 것 뒤에, 모든 것 위에, 모든 것 전에 그분이 계신다. 첫 번째 순서, 그리고 높은 등급과 지위가 그분의 것이며, 그분의 위엄과 영광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서 그분은 만유를 존재하게 하셨다. 만유는 그분에게서 나와서 그분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모든 영혼은 하나님께 속하며, 그분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존재한다.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난 이상, 우리가 누구이고 또 어떤 존재인지가 확인된 이상, 이제 그분과 우리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관계는 딱 하나다. 그것은 그분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슬픔만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으며 따르려면 우리의 인격 전부를 그분의 인격에 복종시키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은 법적인 개념이 아니고 아주 실제적인 개념이다.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높여드리겠다는 뜻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무수한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 말씀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역대상 29 장 11-13 절
† 기도
† 적용과 결단
혼란한 이 시대를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당신의 기준이 되어서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면 결단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