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에 휴식을 취하려고 누웠다. 문득 전화기 알림창에 남편 토니가 보낸 문자가 떴다.
여보, 시카고 병원 응급실에서 우리 엄마가 방금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어. 내가 지금 충격으로 너무 힘들어서 의자에서 못 일어나겠어. 빨리 나 있는 데로 좀 와줘.
황급히 거실로 뛰어나갔다.
컴컴한 거실에 토니가 불도 켜지 않은 채 전화기를 손에 쥐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내가 물었다. “여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시 말해봐요.”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토니가 대답했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3일 전에 응급실에 가셨대. 급성 폐렴 판정이 나서 입원을 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에 다시 감염되신 것 같아.
지금 미국의 모든 병원 응급실이 코로나 환자들로 넘쳐나잖아. 코로나 사망자가 많아서 영안실이 만원이라고 빨리 엄마의 시신을 수습해 가라고 그러네. 여기 공항은 봉쇄되어 아무도 나갈 수 없는데 어떻게 하지?”
토니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갑자기 소리를 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물과 한숨 속에서 죄책감이 엄습해왔다.
‘결국 나처럼 남편도 목회와 사역 때문에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구나!’
방에 들어와서 무릎을 꿇고 주님께 울부짖었다. “예수님, 이 일을 어떻게 하지요? 몇 달 전에 우리는 케냐의 아이들 곁에 남기로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지독한 전염병이 돌아 내일의 생명을 기약할 수 없는 장소에서 우리는 당신께 생명을 바치는 헌신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머나먼 고향에서 시어머니의 시신을 둘 장소도 없고, 장례를 도울 사람도 없습니다.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면 아마도 남편의 가슴에 못이 박혀서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예수님, 지금 어디 계세요?”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하는데 마음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예수님의 음성이 속삭이듯이 들렸다.
“눈물을 거두고 일어나라. 이제 너희가 가리라!”
그 순간, 나는 놀라 뒤로 벌렁 자빠졌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이 주님의 음성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은요? 아이들은 우리가 떠나면 굶어 죽습니다. 또한 지금 케냐 전국의 공항이 봉쇄되어서 비행기가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설령 전용기가 있다고 해도 정부에서 폐쇄한 공항을 우리가 무슨 수로 강제로 열게 하여 떠납니까?
아이고… 주님이시여!”
한참을 그러다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몸에 한기를 느끼며 스르르 눈이 떠졌다. 창문 밖이 짙게 푸르스름한 것을 보니 이른 새벽인 것 같았다. 무심코 전화기를 켜서 통화나 문자의 부재 알림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와있었다.
소수의 일본 대사관 직원을 탈출시키는 소형 비행기가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이번이 케냐의 마지막 탈출 비행기가 될 것이니 일본을 경유해서 미국으로 입국을 시도하라는 안내문이었다.
“여보, 여보… 빨리 일어나 보세요. 지금 나이로비 일본 대사관으로 가봅시다. 내일 새벽에 뜨는 비행기가 있대요!”
토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신용카드를 꺼냈다. 그러고는 세수나 양치질도 하지 않고 무작정 나이로비로 떠났다.
겨우 일본 대사관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긴 줄이 꼬리를 물고 서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대사관 직원 앞에 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토니가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하면 된다. 게으르지 않게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된다.
일본인 직원이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말했다.
“우리에게는 단 한 좌석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좌석은 일본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내일 새벽에 공항에 나와보시길 바랍니다. 항공료가 워낙 거액이라서 혹시 신용카드 불량으로 매표가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맥이 풀렸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비행기가 떠날 시간을 정확하게 물어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풀이 죽은 토니에게 내가 말했다. “여보, 만약 좌석이 하나만 있으면 당신이 미국으로 떠나세요. 제가 케냐에 남을게요. 장례식은 꼭 하고 돌아오세요.”
토니가 나를 가만히 안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찬찬하게 말을 이었다. “여보, 이 비행기는 특별기예요. 케냐 공항이 봉쇄되었는데 내가 장례식이 끝났다고 어떻게 마음대로 돌아올 수 있겠소? 만약 내일 새벽에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요. 함께 갈 수 있으면 가고, 그럴 수 없다면 같이 포기합시다.”
문득 어젯밤 내가 잠들기 전에 주님께서 속삭이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나 토니가 행여 내일 새벽에 실망할까 봐 감히 입을 떼지는 못했다.
나는 서둘러 교회 사무실의 원주민 부목사에게 갔다. 만약 우리가 떠나게 되면 이후에 케냐가 어떤 상황으로 변하든지 아이들을 위한 대처를 해줘야겠다는 어미의 마음이 들었다. 부목사에게 수중의 현찰을 모두 주며 이제부터는 그가 교회의 모든 일과 업무에 책임을 지고 행해야 한다고 일렀다.
토니와 나는 읍내 은행에 가서 개인 계좌의 비상금 잔고를 모두 출금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빈민굴 교회에 우리가 세운 장로님을 급하게 불렀다.
“장로님,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우선 빈민굴의 급한 가족들 식비만 매주 조금씩 나눠주세요.”
나는 장로님의 해지고 너덜거리는 옷을 보고는 토니의 남아있는 겨울옷과 신발을 전부 챙겨주었다. 내가 케냐를 못 떠나면 토니라도 떠나보내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옷과 신발까지도 마저 다 챙겨서 왕복 버스비와 함께 장로님에게 주었다.
‘토니라도 일단 미국에 도착하면 의류는 그때 가서 주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다음 날 새벽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랩톱과 여권, 속옷, 성경만 챙겨 나왔다. 캄캄한 새벽, 우리가 공항에 제일 먼저 도착했는지 공항 문은 열려있는데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잠시 후 일본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집합했다. 다들 전쟁 영화에서나 봤던 피난민처럼 큰 이민 가방을 들거나 대형 백을 메고 대합실에 몰려 들어왔다. 일본 대사관 직원이 탑승자 명단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긴급 탈출 비행기라서 좌석표 같은 것도 없이 국제선 입구로 호명된 사람만 한 명씩 들여보냈다. 우리는 문 앞에서 들어가는 일본인들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이제 케냐에는 수중의 돈도 없고 입을 옷과 신발도 없었다. 남아있는 건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낯선 곳에서 탈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내 이름이 불리길 간절히 기다리는 조마조마한 심정을 상상해보라! 휴거 시 마지막 나팔을 불 때 다른 사람들은 하나둘 올라가는데 홀로 남아 주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시길 간절히 기다리는 순간을 상상해보았는가?
가슴이 쿵쾅거렸다. 대사관 직원이 마지막 이름이라며 호명했다. 바로 토니와 나의 이름이었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실로 살아계시는 분이다. 할렐루야! 그렇게 우리는 일본행 탈출 비행기에 극적으로 올랐다.
‘예수님, 진실로 고맙습니다.
저희는 아프리카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디 저희가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이 있게 하옵소서!’
- 동산의 샘, 제시카 윤
† 말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시편 50:15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요한복음 15장 7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 시편 62편 5절
† 기도
주님. 낙심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가장 좋으신 길로 이끄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결국 안되겠지 하는 마음에 기도가 시들었습니다. 주님. 기도의 마음을 부으소서. 최악의 상황이라도 기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만약, 목사님께서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준비하지 않고, 새벽에 나서지 않았다면 주님의 뜻과 만날 수 있었을까요? 기도와 노력은 함께 가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다 맡기고 기도만 하라고 하실 때는 그렇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되고요.
하나님은 부르짖는 모든 자에게 후하십니다. 돕기 원하십니다.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도 지금부터 기도합시다.
책<동산의 샘>의 이 말을 기억합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하면 된다. 게으르지 않게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