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 시 63:8
기독교 신학은 ‘선행적(先行的) 은혜’라는 것을 가르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인간을 찾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죄에 물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하려면 그 전에 먼저 그 사람에게 빛이 비취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 조명(照明) 하나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조명은 참된 것이다.
이 조명이 있은 후에 인간의 마음이 움직여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 조명의 은밀한 결과다.
우리가 그분을 찾는 것은 그런 충동을 그분이 먼저 우리 안에 불어넣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먼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절대 그분을 찾지 않는다.
우리 주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 ‘선행적 이끄심’이 있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는 것을 절대 우리의 공로로 간주하지 않으신다.
그분을 찾겠다는 충동은 그분에게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충동을 따라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그분을 가까이 따라야 한다.
그분을 찾아가는 내내 우리는 이미 그분의 손 안에 있다.
그렇게 때문에 시편 기자는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 63:8)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것과 인간이 그분을 따르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며, 폰 휘겔(von Hu¨gel)의 말처럼 그분이 언제나 앞서 가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즉 하나님의 선행적 행하심이 인간의 현재적 반응과 만나는 곳에서는 인간이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분의 은밀한 이끄심이 우리의 하나님 체험을 통해 확인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의 이끄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분의 이끄심과 우리의 반응이 가슴 푸근한 감정적 언어로 표현된 것이 시편 42편 1,2절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1,2).
또한 이것은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시 42:7)라는 말로 표현되었는데, 그분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라는 성경의 진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율법주의와 무익한 인간적 노력에서 우리를 건져주는 복된 소식이다. 그런데 이 교리가 악한 무리의 손으로 넘어갔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이신칭의의 개념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회심’이라는 것도 기계적으로 뚝딱 처리되기 때문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 사람들은 윤리 문제에서 어떤 갈등도 느끼지 않으면서 믿음을 행사한다.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은 자아를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그분을 영접했다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굶주림이 없다.
심지어는 “너무 잘 믿을 것 없고 작은 믿음에 만족해도 됩니다”라고 가르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현대의 과학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기이한 것들 속에서 헤매느라고 오히려 그분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기이한 말씀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그분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그분이 인격적 존재이시기에 그분과 우리 사이에 인격적 만남의 관계를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개념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다.
인격적 존재는 본래 다른 인격적 존재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간에 충분히 알려면 단 한 번의 만남으로는 부족하다. 서로를 충분히 알려면 오랜 세월 사랑의 만남을 지속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는 하나의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에게 반응할 때 생겨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주 사소한 다툼의 경우에도 그렇고, 인간의 마음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히 깊고 충만한 교제의 경우에도 그렇다.
종교의 본질은 창조된 인격체가 창조주, 즉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참된 종교에 해당되는 말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다.
그분의 본성 깊은 곳에서 그분은 다른 인격체들처럼 생각하고, 의지를 가지시며, 즐거워하고, 느끼고, 사랑하시며, 무엇인가를 바라고, 고통당하신다.
그분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실 때 그런 인격체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로로 사용해 우리와 소통하신다. 속량 받은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 사이에 사랑과 생각의 소통이 당혹감 없이 늘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가슴 설레는 요체(要諦- 중요한 깨달음)이다.
- 하나님을 갈망하다, A.W. 토저
† 말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시편 42장 1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 잠언 8장 17절
† 기도
매일 삶속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가까이 따르길 원하오니 만나주시고 친밀한 교제를 통해 삶에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되어 그분과 인격인 만남을 통해 소통하는 하루를 보내세요.
| 본 테마는 2023년 2월 7일 앙콜테마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