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찔림 앞에 이를 갈 것인가? 마음을 찢을 것인가? (마12:22-50)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성령께서 마음에 찔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내가 지독한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감당 못 할 큰 사랑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찔림 앞에서의 반응 역시 두가지로 갈립니다. 사도행전에는 이 '찔림' 앞에 선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베드로의 설교(행2장)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통회했던 무리들과, 스데반의 설교(행7장)를 듣고 똑같이 마음에 찔렸으나 오히려 이를 갈며 돌을 던졌던 무리들입니다. 이 극명한 차이는 오늘 본문의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라서 무지함 때문에 진리를 대적하는 건 나중에 성령의 조명을 받고 깨달아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직접 찔림을 주시고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조명해 주셨는데 그걸 뿌리치고 대적한다면...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불신앙의 길, 즉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훼방죄는 어떤 특별한 구원의 예외조항이 아니라... '믿지 않는 죄(불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듭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따뜻한 성령님의 초대를 거부하고 사망과 어두움을 선택하는 걸까?"
머리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본능이 자꾸만 사탄이 설계한 '조건적 세계관'으로 도망치는 이유는... 우리가 포기 못하는 세 가지 단단한 벽돌이 마음을 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통제권'입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는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야지"라는 조건적 사고는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가짜 안도감을 줍니다.
둘째는 '우월감'입니다. 조건이 있어야 차별이 생기고, 그래야만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익숙함'입니다. 세상은 늘 '기브 앤 테이크'였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사랑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하는 불편한 생각에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익숙한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성령을 거부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나라는 존재의 무너짐'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오랜 세월 쌓아 온 '조건'이라는 벽돌들(내 배경, 내 가치관, 내 열심 등)이 은혜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해야 하는 '자기 부정'의 과정이 너무나 뼈아프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를 부인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다(눅9:23)"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사탄의 조건적 세계관은 우리를 잠시 세워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게 만들고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의 감옥에 우리를 감금시켜버립니다. 우리가 성령의 찔림을 받아 그 견고한 '조건적 아성'을 스스로 허물고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안으로 뛰어들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 사랑 안에서 다시 세워지는 놀라운 정체성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 아직도 견고하게 박혀 있는 '조건'의 벽돌들을 미련없이 허물고 깨뜨리기 원합니다. 나를 증명하려 애쓰던 피곤한 손을 내려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용납하시는 주님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우리는 조건의 성벽 너머에 펼쳐진 성령 안에서의 광활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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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찔림 앞에
이를 갈지 않고
마음을 찢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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