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를 만나 아파하고 울고 있는 그들에게
사실 무슨 말인들 위로가 되겠는가.
진정한 공감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아픔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만 하실 수 있는 영역이다.
치유자는 오직 예수님이시다.
내가 그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뿐이다.
눈물 뿌려 기도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랄 때가 많다.
그분들을 내가 언제 보았다고 이렇게도 꺼이꺼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도와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 모습에 놀랄 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에 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위해서 그렇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울며 기도했다.
내가 너를 그렇게 30년 동안 기다렸다."
중보기도는 나를 기다려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나의 의리이자 보답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지금,
나는 가장 감사한 중보자다.
책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_임금주>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