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해 받고, 눈물났던 일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렵게 신청해서 간 세미나에서,
결국 수강도 못 한 채 차를 돌려 돌아와야 했던 경험이 있다.
한 성도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나에 대한 큰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장 가서 그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주님은 멈추라는 사인을 주셨다.
분명히 사건의 진위를 밝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주님은 거듭 멈추라고 하셨다.
그렇게 차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고백했다.
"주님, 나는 십자가 앞에서 죽었습니다."
무려 열 번을 고백했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열 번을 더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세 번째로 열 번을 더 반복하며 고백했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지. 나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지.
내 자존심도, 내 자아도, 내 체면도 십자가에서 죽었지.'
그 고백을 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때야 주님의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박 목사야, 오해받는 것이 섭섭하냐? 나도 그랬다.
나도 오해받고, 수모를 당하고, 모욕을 당했다.'
주님의 이 한마디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얼마나 많이 이 고백을 했을까?
입술을 깨물며, 수십,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하며 고백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과 생각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단순히 성격적인 겸손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경적인 겸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성도들이 그저 성격적 겸손이 아니라
성경적 겸손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성경적인 겸손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한다.
오늘도 있는 그 자리에서 엎드리시길 바란다.
때가 되면 주님이 반드시 높여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베드로전서 5:6
책 <기름부으심 _ 박춘광> 중에서
★ 묵상
예전에는 부드러운 말투와 온유한 행동들을 보면서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습니다.
"괜찮아요. 내 뜻대로 해도 하나님이 다 응원하세요.
아브라함도 보세요. 이스마엘 낳아도 다 돌보시잖아요.
그리고 인생은 결국 다 운이죠. 유전 따라서 가는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셨고
이삭을 택하셨는데도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에 있어서 자기 뜻대로 결정합니다.
또 어떤 분은 교회 데코를 하려고 열심히 데코를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리더분들이 지금 교회 분위기와
좀 안 어울리니 이번에는 다른 분위기로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리더십과 논쟁하거나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옮긴 분도 있습니다.
정말 이것이 겸손일까요?
아닙니다. 겸손해 보일 뿐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 앞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분별하며, 중보하고 우리 자신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실 때,
멈추는 겸손이 우리에게 있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