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종종 벼랑 끝으로 몰아가십니다.
때로는 너무하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단순히 구원받았다는 것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걸음만 더 가면 절벽에서 떨어지는 벼랑 끝으로 몰아낼 때가 있습니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끝나는 거 아니야?’ 그런 심정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도 벼랑 끝에 세우셨습니다.
노인이 된 모세에게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벼랑 끝에 서라는 명령입니다. 노인이 된 모세가 어떻게 이집트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 풀어주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모세는 순종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광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땅이 아닌, 황량한 사막으로 내몰렸습니다. 수백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매일의 생존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게 하셨고, 욕심내어 더 거두면 상해서 먹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하루 먹을 만나만으로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벼랑 끝에 서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중에도 그런 형편에 있는 분이 계신가요? 가진 것이 하루 먹을 것뿐이고, 매일 주님께 생존을 구해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을 그렇게 살았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벼랑 끝에 서도 하나님은 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벼랑 끝에 가서 서 있게는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매일의 광야 훈련을 40년 동안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긴 시간을 그렇게 이끄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진정 이 믿음을 갖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먹이신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살리신다”는 이 믿음이 진심이라면 우리는 어디에 가든 살 수 있고,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만나를 먹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먹이고 살리신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광야로 이끄시는 이유입니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광야를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좌절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의 준비 기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 위험이 도사리는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한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살지 못합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은 자칫 하나님이 아니라 회사 사장을 바라보며 살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이 영적으로는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회사에 사표를 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어떤 환경에 있든 오직 하나님만을 계속 바라보는 삶입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진정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궤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이나 음료를 피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분노하지 않기 위해 논쟁을 피하고, 남의 일에 얽히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꼭 필요한 데만 돈을 써가며 저축한다고 해도,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삶은 풍랑 앞에서 도망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의 리듬에 맞추는 삶입니다. 풍랑 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하지만 풍랑이 거세질수록 우리는 도망치려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훈련하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이 벼랑 끝에 서는 상황인 것입니다. 주님만 붙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주님만 의지하는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건 연습이야. 실제로 위험하지는 않아”라고 하시며, 땅바닥에 선을 긋고 “여기를 절벽이라고 생각하고 걸어와”라고 하시면,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선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절벽 위에 서서 “한 걸음 더 내디뎌라”라고 하시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주님이 붙잡아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정말 붙잡아 주실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그 한 걸음을 내디디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믿음으로 세우실 때, 꼭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벼랑 끝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바로 주님과 나 사이를 점검할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믿음의 훈련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교회, 일터 등 삶의 모든 자리에서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정말 믿고, 죽은 자도 살리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이 진정 원하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돈키호테처럼 무조건 불 속이나 물 속으로 뛰어들거나, 바다에서 무조건 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주님이 하라고 하신 것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번 돈을 어떻게 쓸지 주님께 묻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하루하루 주님의 공급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일수록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 쉬우며, 형편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겠다고 기도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공급하시고, 건지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미래를 맡기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을 행해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적재적소에 사람을 보내시고, 환경을 움직여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참된 공급자이시며, 언제나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 예수 동행 오직 믿음, 유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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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1:8~9
† 기도
주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주신 것들보다 주님을 더욱 붙들기 원합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의 삶을 이끌어가시며, 나의 삶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신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가기를 간구합니다. 지금 나의 삶이 벼랑 끝에 내 몰렸다 여겨질지라도 내게 주신 하루의 삶 그 시간들 속에서 벼랑 끝에 몰린 상황과 기분보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는 것에 집중하며 나아가 주님과 함께 이 상황을 헤쳐나가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오늘 다른 무엇보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에 가장 먼저 힘을 쏟기 원합니다. 다른 것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생각이 들더라도 이 상황과 함께 하고 계실 주님께 더욱 집중하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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