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에서 ‘사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단순히 ‘맡겨진 임무’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은 단순한 과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태도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이 정말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보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을 가장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힘이, 예수님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 사랑 안에 있다면
바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참다운 ‘사명’과 접속되는 것입니다.
교만의 정점은, 지독한 자기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는 자기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기 부인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지독한 사랑입니다.
그대는 반드시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원망의 말이나 실패자의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주인을 사랑해서,
그 앞에서 어린아이같이 낮아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건 진정 주님을 사랑하면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자기 부인의 절정에는 주인을 향한 이런 사랑이 있습니다.
책 <교만_김일환> 중에서
★ 말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요한복음 21:17 중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요한복음 15:5
★ 묵상
다 무너져도, 예수님만 계시다면
괜찮았던 처음 사랑.
홀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찬양과 기도를 드리던 그 사랑.
광야를 걸으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 곁에 서겠다고 했던 다짐들.
혹시 그 사랑의 빛이 바래지진 않았나요?
모든 사명의 이유와, 삶의 이유가
예수님이였던 그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의 동기와 마음을 정결케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예수님, 빈 껍데기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지금, 당신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