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최근 들어서는 세상도 태도의 중요성을 많이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님이 누구이고,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산은 얼마나 되는지 등 그 사람의 태생을 태도보다 더 중요하게 보고, 뛰어난 능력 등의 자질을 자세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준은 다릅니다. 모든 기적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나오며 기적의 출발점이 예수님이시기에, 각 사람의 태생과 자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향한 태도와 자세입니다. 태생과 자질이 어떠하건 예수님을 향한 바른 태도와 자세를 지닌 자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다고 성경은 일관되게 말씀합니다.
여기 두 항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금(gold)으로 만든 금 항아리이고, 또 하나는 흙으로 만든, 그런데 금(crack)이 간 항아리입니다. 금 항아리와 금 간 항아리. 한 글자밖에 다르지 않지만 두 항아리의 가치는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분과 자산, 자질과 능력치를 보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대단한 스펙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예수님 앞에서는 먼지와도 같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태도와 자세입니다. 우리 몸이 예수님을 향해 있는지,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을 향해 열려 있는지를 보십니다.
먼저 대가 지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몸의 태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시 유대 사회는 병, 특히 이 나병에 걸린 것을 천벌 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중세 유럽 시대만 해도 나병환자들은 검은 외투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옷을 입고, 피리나 방울 등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혹시라도 주변에 사람들이 다가올 때, 내가 부정한 나병환자라는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세가 이 정도니 예수님 시대에는 더했겠죠.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에게 다가가다가 자신이 나병환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한 비난과 위협에 굴하지 않았죠.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 앞으로 간 나병환자의 모습에서 나는 과연 주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죽음을 무릅쓴 나병환자의 첫 마디가 놀랍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니요. “내가 이렇게 왔으니 나를 고쳐주세요! 고쳐주셔야만 해요!”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였습니다. 그는 결정권을 자신이 쥐는 대신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 말에는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깨끗하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다는 고백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입니다. 나는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고 있나요?
이 나병환자는 대가 지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몸의 태도,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는 마음의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목사의 10분 성경, 현병찬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시편 55장 22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장 28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예레마야 33장 3절
† 기도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돌아보시고 돌보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또한 나병환자처럼 어떤 위협에도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예수님을 향한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위협과 손해에도 주님께 가까이 갔던 나병환자처럼 오늘도 주님께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기를 기도하고 또한 마지막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는 마음의 태도를 가져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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