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과 유대인,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했으나 그것이 기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그들의 기도를 왜 부정하셨을까요?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마 6:7
중언부언은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들처럼 쓸데없는 말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기도의 진정성보다 기도의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는 것이며, 그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시간과 장소가 더 중요해집니다.
많은 시간 기도하는 척하고,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마 6:5).
그러나 주님은 그런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기도를 많이 한다는 최고의 칭찬을 듣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도는 사람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물론 진실한 마음이라면 길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하면서, 운전하면서 눈을 뜨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군대에 가서도 새벽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다들 하기 싫어하는 가장 힘든 시간대에 자원하여 총을 들고 보초를 서며 기도한 것입니다. 저 북녘땅에서도 새벽기도 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남편에게도 자식한테도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드러내지 못하고 새벽 3시 석탄을 실은 기차의 기적 소리를 자명종으로 알고 일어나 그 긴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기도하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진실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지 어디서나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삶과 동떨어진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바리새인은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기도했는데도 칭찬은커녕 책망만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즉시 찬바람이 나고, 차별금지법을 막아달라고 기도하면서 행동에 나서지는 않습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면 입을 열어 전도해야 하는데, 영혼을 살려달라는 걱정뿐입니다. 이것은 거짓이요 위선적인 기도일 뿐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될 때 강력해집니다.
그러면 진짜 기도는 무엇일까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만나려면 어떤 방법으로 만나게 되나요? 먼저 만나기로 약속을 해야 합니다. 아무개에게 전화나 문자로 만나러 가도 좋은지,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만나기 싫다고 하면 속절없이 만나지 못합니다. 약속 없이 갑자기 찾아가면 설령 그 사람이 만나주지 않아도 결례가 아닙니다. 그런데 만나기는 만났는데 그냥 와버린다면 그것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만난다는 것은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만남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정상 만나기 어려울 때 “그러면 전화로 하시지요”라고 청할 때가 있는데, 꼭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다가 끝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 경우에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쁘시니 전화로라도 간단히 말씀드리겠다”라고 해서 대화가 시작되면 그 대화를 통해 정보가 교환되고, 사람을 소개받기도 하고, 딱한 사정, 좋은 소식, 진정한 충고와 권면을 나누며 서로 유익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전화로 이야기해도 충분히 알아듣고 만난 것과 같은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직접 만나도 대화가 안 되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말하는 것이 곧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든지, 묵상하든지, 말을 하는 것은 어떤 의사를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방언 역시 내 영이 하나님께 요구하든지, 찬성하든지, 간구하든지, 사정하든지, 하소연하든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입으로 뭔가 말을 할 때 주님과 교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렘 33:1-3
시위대 뜰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예레미야에게 전달됩니다. 자기 편 하나 없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끝장나버린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부르짖기만 해라. 나한테 말을 해, 내가 네 말을 듣고 일해줄게. 나한테 말을 해, 내가 너 대신 성취해줄게. 나한테 말을 해, 너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내가 크고 은밀한 일을 다 너에게 보여줄게.”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여 말함으로써 그분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놀라운 비밀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 재벌 총수를 만나는 사람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제나 고민 또한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재벌 총수나 대통령보다 못합니까?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감정이 변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사람들에게 속기도 하고, 엉뚱한 소리도 하고, 사심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신실하시고, 정직하시고,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놔두고 왜 사방천지를 돌아다닙니까? 그분께 와서 말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나는 사람과 하나님과 담쌓고 사는 사람의 형편이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들판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도 수시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뜻을 묻고 행동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떨어져서 회막을 짓고 그곳에서 주님과 대면하고, 고민을 말하고 전략을 얻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존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 너는 부르짖으라, 박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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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예레미야 33:3
† 기도
하나님,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진정한 교제를 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저희의 부족함을 용서해주시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진실된 기도를 드려서 하나님과 교제하기로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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