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형성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어떤 언어 시스템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은 일관성 있게,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언어 시스템의 결과이다. 누군가 자신의 언어 시스템을 가족 시스템으로 작동시키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서 가장 말발이 센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처럼 말발이 센 사람이 일관성 있게 반복적으로 오늘도 그 언어와 그에 걸맞은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언어 시스템이 곧 가정 시스템화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가정의 운영 방식은 그 사람의 말발이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의 약육강식 규칙은 정글과 같아서 강자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낸다.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남편이 몇 개월째 한집에서 말 한마디 없이 남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여러 말로 사과를 시도하고, 심지어 무릎을 꿇고 빌어봤지만, 남편이 전혀 받아주지 않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억울해서 당장이라도 따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아직 결혼 전이라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상황을 알면서도 때때로 치솟는 울분 때문에 이성을 잃을 것 같아요. 당장이라도 이혼하고 싶어요. 제 처지가 답답하고 한심하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 가정의 시스템을 실제로 가동하고 통제하는 자는 남편이고, 그가 그 가정의 강자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그 집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그는 알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침묵으로 가족 전체를 위협하여 가족을 확실하게 자기 발아래 둔다. 이는 자신이 이 집의 왕임을 드러내는 짙고 깊은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열등감에 빠진 못난이의 허세이며, 절대 내려놓지 못할 크리스털처럼 연약한 왕권이다. 떨어뜨리는 순간 깨지기 때문에 그는 더욱 깊은 침묵으로 왕권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가정 시스템에서 ‘힘센 자’ 혹은 ‘강자’가 무엇으로 그 힘을 갖게 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경제력이든, 학력이든, 못된 성질이든, 폭력성이든, 혹은 집안 배경, 부, 외모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힘을 발휘하고, 자기의 ‘말발’이 서게 하며, 강한 자가 되도록 돕는다면 모두 허용된다는 점이다. 가정 시스템은 그 사람의 무대가 되어 강자가 원하는 대로 구성되어 간다. ‘가장 힘센 자’가 시스템에서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고, 시스템은 그 일인자를 위해 모든 기능을 다하기 시작한다.
시스템은 누가 만들었든지 상관없이 항상 ‘블랙홀’이 존재한다. 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해결되지 않은 사연이 만들어내는 부작용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경험으로 축적하고 건축한 ‘개인의 모국어’와 그 ‘모국어의 주제’, 그리고 그 주제가 휘두르는 ‘주제 감정’이 있다. 그것이 시스템의 바닥을 드러내고 구정물을 흘려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만능 해결사 같아도, 그 사람의 풀리지 않은 사연이 모든 부정적인 힘의 원천이 되어 시스템을 비틀거리고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끊임없이 빠지는 어둠의 늪이 되게 한다.
상처가 많을수록 그 사람은 더욱 간절히 강자가 되기를 원한다. 때로는 ‘드러난 약자’로 자리매김하여 ‘은밀한 강자’로 힘을 발휘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드러난 강자’의 그늘 밑에서 2인자의 역할과 기능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때로는 강자를 은밀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강자를 앞지르지는 못한다. 강자는 많은 상처가 놀라운 에너지원이 되어 자기가 깔아놓은 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미친 듯이 지휘봉을 휘두른다.
강자는 무척 현란하게, 무척 난처하게, 무척 혼란스럽게, 무척 짜릿하게, 무척 험하게, 무척 집중해서 오선 줄에 줄을 덧대가며 난폭한 음표를 찍어댄다. 난리법석인 음악은 매번 관계의 엇박자를 내고 흉측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가정 시스템에서 자기 마음대로 미친 듯이 지휘봉을 휘두르는 강자가 바로 ‘마스터’이다.
가정 시스템 안에서 강자인 마스터는 해결되지 않은 사연이 많은 사람이다. 해결되지 않은 사연은 매 순간 그 사람을 옭아매는 족쇄이자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오늘마저 미해결의 시공간으로 끌고 가는 자석과 같다. 스스로도 해결되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면서 해결되지 않은 방식 그대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아는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의 평균 점수는 결국 사연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사회적 성공으로 부자가 될 수는 있지만, 관계 영역은 항상 마이너스 통장을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언어만큼 생활한다. 사연을 가진 자는 사연적 언어를 자신의 개인 모국어로 삼아 살아간다. 이는 사연으로 자신의 언어판을 깔았다는 뜻이다. 이제 그 언어판에서 생산하는 언어 외에 다른 모든 언어는 외국어이니 알지 못하고, 서툴러서 사용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모국어 외에 다른 것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새로운 언어는 절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모국어의 수준 이상을 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말만큼 그 자신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사연이 가슴에 품고 살아갈 만큼 소중한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저 아프고 슬프며, 부정적이고 악한 언어로 취급하고 지나쳐야 한다. ‘사연’은 과거적이고 부정적인 언어이므로 다시 접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교훈 하나만 얻어 정리하라. 그 사연 자체는 다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금지 언어이다. 마치 무엇을 먹고 체한 것 같은 언어로, 그래서 재차 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삶에서 문제는 항상 커지고, 상처는 더욱 막강해진다. 막강한 상처는 개인의 모든 일을 조종하고 간섭한다. 매번 해결하려고 시도해도 관계는 막히고, 성공하려고 애를 써도 사람은 망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연이 많고, 상한 감정으로 똘똘 뭉쳐서 살아가는 사람이 가정의 마스터라면, 마스터의 상한 힘이 가정에 존재하는 모든 건강함을 억누른다. 그것이 그 가정 시스템의 운명이다.
- 가정 시스템, 도은미
† 말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 31~32
† 기도
하나님, 우리의 언어 습관이, 언어 시스템이 가정에서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연약한 저희를 품어주시고, 상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의 말을 하는 언어 습관을 만들도록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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