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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자퇴를 한다는데, 아들이 아니라 이 세대를 위해 울라구요?



말씀이 주는 힘으로 살았다.

삶은 거칠고 팍팍했지만 말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살아갈 힘이 생기곤 했다.

말씀이 내게 쉼이 되고 기도의 등불이 됨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세월이었다.


그러던 어느 한 날, 내게 시험이 찾아왔다.

청소년기를 힘들게 보낸 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이 1학년 2학기를 보내다가 자퇴서를 내야 했던 일이다.


사실 나는 아들이 대학 한 학기를 다니는 동안,

이러다 아들이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할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었다.

평소 재능을 보였던 미술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 교수님들의 칭찬도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운전해서 아들의 등하교를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즈음에는 아들 혼자 전철을 타고 다니는 등의 일도 차츰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2학기 들어, 수업하다 전화가 걸려와 데리러 와달라는 요청이 이어지더니

이윽고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상태를 맞이하고 만 것이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 사람인가 봐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이 말을 하는 아들과 함께 자퇴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오던 날,

나는 안방 문을 닫고 하염없이 울었다.

소망하던 바가 좌절된 데서 오는 슬픔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건강한 아이들도 자신만의 뜻과 계획이 바뀌면 언제든 대학을 그만두기도 해.

아예 대학을 안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고…. 우리 아이가 가야 할 또 다른 길이 있지 않겠어?

래서 나는 이쯤에서 아들이 자퇴한 것도 나쁜 일이 아니라고 봐.”


“나도 알아. 그래도 오늘은 그냥 눈물이 나. 엉엉.”


어린 나이에 불안장애가 시작되어 아무것도 못 할 것처럼 힘들어하던 큰아들이 이만큼 자라

대학 근처에 가봤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담담히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그다음 길을 모색하며 격려해야 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평범한 길, 표준화된 길을 가지 못하는 큰아들에 대한 엄마로서의 연민에 가슴이 찌르듯 아팠다.


나는 다음 날 아침부터, 온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성경을 펴 읽었다.

마침 호세아서를 읽을 차례였다.

호세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과연 내게 뭐라 말씀하실지 귀 기울이며 성경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서너 시간 동안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 성령께서는 내게 일관되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아들의 자퇴 때문에 울지 말고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를 위해 울라.


큰아들이 자퇴한 일은 하늘 무너진 것처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느낌도 얹어주셨다.

내가 비통하고 슬퍼하며 울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떠난 이 세대의 음란함과 악함이기에 이제는 이 세대를 품고 중보기도하는 자로 살라는 소명도 일깨워 주셨다

<나는 기도하기로 했다> 한근영


나의 자녀를 보던 시야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품는 시야로 변하는 것을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 이땅의 아이들을 품고 엄마의 마음으로 울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다음 세대 아이들이 주님을 떠나지않고 주를 찾고 주님의 길로 갈 수 있게 먼저 믿음으로 살아온 부모 세대가 품고 기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