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게르와 자르였죠.
게르는 이스라엘을 좋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었고, 안식일을 함께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르는 달랐지요. 자르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이 자르의 풍습을
따라 살기를 원했지요.
게르는 이스라엘을 원했고 결국 이스라엘과 함께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게르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자르는 여전히 이스라엘 밖에 있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게르는 너희들과 하나가 될것이다.
게르는 너희와 함께 몫을 받을 것이다.
너희 자녀를 자르와 결혼시키지 마라
너희는 자르의 풍습을 배우지 마라
예상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르’와 ‘자르(or 너크리)’는 이방인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입니다.
‘게르’는 ‘나그네’로 번역되는데, ‘거주하는 이방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게르’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방인이라는 의미를
더하고 싶습니다.
그냥 나그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길 원하는
그런 이방인들 말입니다.
출애굽기 23:9
“너도 애굽에서 게르였다.
너 가운데 살고 있는 게르를 멸시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그냥 나그네로 살지 않았습니다.
애굽에 동화되어 살지 않고 조상들의 하나님,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게르’-여호와를 사랑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출애굽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따라나온 게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합니다.
왜 애굽을 포기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과 출애굽의 긴 행렬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너 가운데 살고 있는 그 게르들을 멸시하지 말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하는 이방인이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세기 23:4
“나는 당신들 중에 게르(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아브라함도 자신을 게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헷족속에 머물러 살았지만 그들과 하나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돈을 주고 헷 족속의 땅을 구입하였습니다.
‘게르’가 돈을 주고 땅을 얻는 이 장면은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사야 14: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게르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야곱족속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방인들,
바로 ‘게르’가 ’하나가 된다! 연합된다!’ 말씀하십니다.
게르는 결국 이스라엘백성과 하나가 되는 큰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접붙여지는 것입니다.
게르가 야곱족속과 하나가 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자르를 설명한 다음에 이 부분에 대해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르와 너크리가 나오는 말씀입니다.
시편 81:9
“너 가운데 자르의 신을 두지 말며 자르의 신에게 절하지 말라”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방신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자르는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족속입니다.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11:2
“너희는 너클리와 결혼하지 말라… 너클리가 반드시 너희 마음을
너클리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과 너클리를 결혼시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방인라는 단어안에 전혀 다른 2가지 의미(게르와 자르(너클리))가
있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 게르가 이스라엘과 연합되었을 때 얻는 유익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룻기입니다.
룻기 2:10
“…나는 너클리여인(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룻은 보아스 앞에서 자신을 너클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클리에게 왜 잘해 주십니까? 너클리는 당신에게 은혜받을 자격이
없는데요…’
룻기 2:11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보아스의 말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아니야, 너는 이제 ‘너클리’가 아니야.
너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왔지?
너는 이제부터 ‘게르’야. ‘게르’인 너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한 상, 너의
삯, 몫을 주실 거야.”
엄청난 감동아닙니까?
‘게르’에게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만 받을 수 있는 몫을 ‘게르’에게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연합한 ‘게르’들에게 영적인 유업과 물질적인 유업을
이어받게 하십니다.
룻기에 나오는 두 명의 이방인이 있습니다.
룻과 오르바.
룻은 ‘게르’입니다. 오르바는 ‘자르’입니다.
이스라엘과 연합한 룻은 메시야의 계보에
기록되는 영광을 받습니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오르바는 골리앗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연합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합니다.
지난 토요일에 새벽예배를 갔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27:1~10 이었습니다.
유다의 은화 30세겔은 예수님의 피값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값이 무엇을 사게 되었습니까?
“나그네의 묘지”입니다.
‘게르’의 묘지터가 구입되어 진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막벨라굴을 구입한 장면과
오버랩됩니다.
아브라함은 돈을 주고 아내의 묘지를 구입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장 소중한 근거가 됩니다.
“저 땅은 우리 조상이 묻힌 땅이다.”
예수님은 피 값은 ‘게르’의 묘지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왕의 도시 예루살렘을
소망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게르’는 아니지만
영적인 ‘게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세상의 창조주이심을
믿고 있으며
안식일을 지키고,
이스라엘의 고엘, 메시야를 믿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1부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극동방송에서 이런 설교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제 귀에는 “우리 ‘게르’로 살아갑시다.” 라고 들렸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완전히 연합된 그림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그 날에 그것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고대했던 그 날,
뜨거운 찬양과 함께 ‘게르’들은 눈물을 흘릴것입니다.
“드디어… 드디어 완성되었어…”
주님은 ’게르’들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계7:17)
“우리 ‘게르’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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